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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Nov 30. 2023

재능의 그릇인 내가 손상되지 않도록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린도후서 4:7)


성경은 인간을 질그릇이라고 표현했다. 정신도, 육체도 잘 깨진다는 얘기다. 나이가 드니 몸의 에너지가 이전처럼 빨리 회복되지 않음을 느낀다. 열정에 불타올랐다가도 소심해지고 의기소침해지기를 반복한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대부분 밥줄인 직장에 목을 매고 사는, 약간 씁쓸한 현실의 무게감을 짊어지고 산다. 나 또한 그렇다. 특히 나는 감정이 민감해서인지 타인의 말에 상처도 잘 받고, 아무 일도 없는 현재에 불안을 느끼기도 하고, 늘 거주하는 공간에서 한없는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과 재능도 그것을 담고 있는 내 그릇이 깨져버리면 소용이 없다. 나의 에너지가 0에 가깝게 고갈돼 버리면 좋아하는 일, 재능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만사가 귀찮다. 모든 것이 재미도, 의미도 없어진다. 자기계발서에는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방법론이나 법칙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정작 내가 침체에 빠졌을 때는 그런 조언은 씨알도 안 먹힌다.


재능이 꽃 피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재능을 성장시키는 것 이상으로 재능을 담고 있는 그릇인 나를 보호하고 사랑해 주는 일이 중요하다. 그릇이 깨지면 만사가 도루묵이다. 나를 지킨다는 건 우선 내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정신적 건강을 위해 자존감을 높이고, 육체적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면 좋다는 걸 알고 있지만 늪에 빠져 있을 때는 스스로 거기에서 헤어나와 이런 활동을 재개하기가 쉽지 않다. 그럴지라도, 쉽지 않을지라도 살짝 흠이 간 정도가 금이 가고 깨지지 않도록 스스로 마지노선을 정하고 스스로를 보호하자.


우리가 살아있는 이상 어떤 면에서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한다. 생존을 위해서 물고 물리는 동물의 세계와 같이 인간 사회도 생존을 위해서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입히는 불가피한 시스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너무 순진하게, 갑옷이나 방패도 없이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호기로운 생각을 가져서는 곤란하다. 재능의 그릇인 나를 침범하고 흠을 내는 타인과 외부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내가 손상되고, 결국 내 재능도 손상된다.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낯선 누군가가 나를 향해 침을 뱉거나 쌍욕을 했다고 치자. 그 순간에 흥분해서 폭력 사건에 휘말리거나, 참았다 하더라도 그 일로 하루 종일 분노나 우울에 쌓이게 된다면 결국 내 손해다. 나의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무작위무쓸모 건에 낭비하고 소진했기 때문이다. 회복을 빨리하고, 오늘 내가 원래 하고자 했던 일 - 운동이든, 악기 연습이든, 멍 때리기든, 맛있는 음식 먹기든 - 을 하는 것이 승리요, 나를 지키는 일이다.


가끔은 주객이 전도되기도 한다. 재능도 결국 내가 행복하기 위해 추구하는 것인데, 거기에 너무 집착하고 매몰돼서 나를 잃어버려서는 곤란하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내가 어떤 분야에서 아무리 뛰어난들, 남들이 인정해 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게 스트레스와 상처를 주는 외부 요인이 일시적이라면 너무 거기에 꼽히지 말고 차 소리 같은 소음이라고 생각하자. 현대인은 차소리라는 소음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집착하기보다는 본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자. 단 본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번아웃이 와서 지쳤을 때는 분명히 평상시와 다른 분위기에서 다른 짓을 할 필요가 있다. 


행복을 강의하는 일타 강사 김창옥도  최근 알츠하이머 의심 진단을 받았다며 강의를 잠정 중단한다는 기사를 봤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는 상황이 많이 있었고, 엄마는 그 삶을 너무 힘들어했는데 그 삶을 구원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스트레스의 원인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나를 지키는 것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다. 이걸 못해서 재능밭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 자체가 망가지기도 한다. 훌륭한 내가 되기 전에 멀쩡한 나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나를 사랑해 주자. 질그릇인 내가 깨지지 않도록 쉬어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도 떨고, 바보처럼 웃어도 보자. 


당신은 예쁘지만 늘 긴장하고 화장한 자신(내면)과 살고 싶은가, 다소 흩트려져 있어도 잘 웃고 편안함을 주는 자신과 동거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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