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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Sep 18. 2020

돈이 있는데 인품도 훌륭한 사람

돈보다 인품이 먼저 보이고, 그 돈도 멋져 보이는 사람

책을 출간해 보니, 특히 공저로 책을 내보니 재밌는 일, 신나는 일도 많지만 감동적인 일도 많다. 오늘은 그 일화를 하나 소개하려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는 부러움과 존경을 사기도 하지만, 질시와 차가운 시선도 많이 받는다. 재산을 모으기까지 어떤 불법과 아부와 비리를 동반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과 함께.  살만한 사람들(중산층) 중 돼먹지 못한 사람들이 종종 있기에 나 또한 중산층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러움과 의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컴퓨터 가게를 13년간 운영하면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났다. 폐업하면서 기억에 남는 몇 분은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 인품이 훌륭한 분들이다. 그중 한 분을 오늘 만났다.


항상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시며 판사인 남편에게 "선생님께 좀 잘 듣고 배우세요"하고 핀잔을 주시던 사모님. 그러면 또 군말 없이 고분고분 말씀을 잘 듣는, 전혀 판사 같지 않은 순한 남편분. 컴퓨터를 고치러 가가호호 방문을 하면 기계나 프로그램을 손보는 일도 많지만, 사용법을 가르쳐 드리는 경우도 많다. 이 사모님은 언제나 인간적으로 나를 대해 주셨기 때문에 나도 성심껏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쳐 드렸고, 사모님과 남편분에게 과외 아닌 과외를 할 때도 제법 많았다. 사모님은 언제나 친절하고 깍듯하셨고, 출장비를 정해진 금액 이상으로 챙겨 주실 때도 제법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가게를 폐업하고 푸드트럭으로 장사를 하다가 손가락을 다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이 남편 분은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사무실을 막 개업한 시기였다. 나는 내 손가락을 이 지경으로 만든 넘과 재판까지 가느냐, 합의를 하느냐에 대해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으므로 염치 불구하고 이 분께 전화를 몇 통 그렸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매우 피폐해 있었으므로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를 했고, 결과는 전혀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례한 나의 상담 전화에 응해 주신 것이 너무 고마웠다. 이 일 이전부터 사모님께 고마운 마음이 많았기에 선물꾸러미라도 하나 들고 인사를 가고 싶었지만, 계속 꼬이는 내 상황 때문에 쉽게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 사모님 아파트 앞을 지날 때마다 찾아뵙지 못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가 책과 앨범을 홍보하려고 카톡을 뒤지던 중 사모님 생각이 났다.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것 같아 전화를 드렸다. 코로나 때문에 밖에서 만나기가 꺼려진다 하셔서 나는 <보통사람들>  한 권과 추석 선물 세트 하나를 사들고 댁으로 찾아뵈었다.


잠시 인사만 드리고 올 줄 알았는데, 사모님과 남편분, 나의 대화는 한 시간 반 동안이나 이어졌다. 내 노래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물으시고, 아는 지인 중 지역가수가 있으니 만나게 되면 내 이야기를 해 보겠다 하신다. 내 유튜브 채널 구독도 하시고, 방송사에서 하는 각종 트롯 경연대회에 참가해 보라 권하신다. 옛날 연예인 유퉁이 창원에서 식당을 하고 있고 TV에도 출연하고 있으니 찾아가서 대시를 해보라고도 하신다.


작년에 비트코인 투자로 거금을 날린 이야기도 하시고, 사주를 봤는데 두 군데 다 술장사를 하면 대박이 난다고 해서 딸이 졸업하고 나면 막걸리 가게를 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히신다. 나는 '그때 내가 만약 운 좋게 지역가수가 되어 있으면 종종 가서 노래를 불러드려야지' 생각한다. 또 '지역에서 나름 밴드 활동을 해서 이래저래 아는 음악인들이 있으니 이벤트로 공연을 한다면 섭외해 드려야지' 이런 생각도... 나도 술집을 운영해 봤으니까(오디오 카페) 이런저런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사모님은 상담 관련 일을 하시는데, 때거리가 없는 사람들은 상담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자비로 쌀도 사주고 하신단다. 워낙 상대방을 배려하고 인상도 좋기 때문에 상담 고객도 금방 느는 모양이다.  다만 정부 자금을 지원받기 때문에 서류 작업이 만만치 않은데, 이때마다 컴퓨터가 서툴러서 애를 먹는다 하신다. 나는 지금이 오히려 편한 사이가 되었으니 언제든 급할 땐 전화하라고 말씀드렸다.


사실 나는 까칠하고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못하기 때문에 폐업 이후로 컴퓨터 관련 문의 오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아내 지인의 부탁도 웬만하면 거절한다. 한마디로 일적으로는 컴퓨터 '컴'자 옆으로도 가기 싫은 것이다. 하지만 이 사모님 부부에게는 아주 기분 좋게 설명하고 친절하게 가르쳐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사모님은 우리가 업주와 고객 사이였을 당시, 내가 아주 조곤조곤하고 차분하게 설명을 잘해서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고 말씀하신다. 이런 쪽에 내게 달란트가 있다고.


그러면서 '축하드립니다'라고 쓰인 흰 봉투와 유기수산 김 선물세트를 건네신다. 감동이다!!! 책 선물하고 봉투 받아 보긴 처음이다. 신사임당이 들어있는 봉투. <보통사람들> 공저 멤버들 단톡 방에 자랑질을 한다. 봉투만 기념으로 내가 갖고 신사임당은 마눌님께 헌납했다. 이런 걸로라도 생색을 내야지.


나는 13년 동안 별로 열심히 장사하지 않았다. 그래도 고객 중에 이런 분 한 분 알게 된 것은 크게 남은 자산이다. 사모님은 본인도 친화력이 탁월해서 고객이 많고, 변호사인 남편 분도 수입이 보통 이상이므로 작년의 손실을 금방 만회할 것이다. 무엇보다 마음 씀씀이가 훌륭하셔서 잘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돈이 있는데 인품도 훌륭한 사람은 돈보다 인품이 먼저 보이고, 그 돈도 멋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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