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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Sep 18. 2020

눈물이, 눈물이 났어요.

나의 첫 직장, 타일공장

이 매거진의 제목을 '반평생 살았으니 정리 한번 할게'로 정한 것은 지나온 내 삶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뇌리에 박혀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을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끄럽고 숨기고 싶었던 과거도 이제는 제법 편하게 말할 나이가 된 것 같고, 뇌리에 박혔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내 삶에 의미가 있는 기억일 테니까.


두 번째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내가 빠져든 대상은 '성경'이었다. 위선적인 인간들을 경멸하고, 그 인간들 중 하나인 나 자신도 경멸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신을 찾게 되었다. 내가 다닌 교회 형제님의 소개로 취직한 첫 번째 직장은 타일 공장. 모르시는 분이 있을 것 같아 말씀드리자면 타일의 원료는 돌가루다. 나는 타일을 생산하는 컨베이어의 마지막 공정인 포장반에 배정되었다. 타일은 특성상 모서리 등이 잘 깨진다. 공정 중간이나 포장 도중 깨진 타일은 하치장에 모아 두었다가 다시 분쇄해서 타일을 만든다.


나는 보통 때는 타일을 박스에 담아 포장한 후 정해진 위치에 옮기는 일을 하다가 깨진 타일이 어느 정도 모이면 그것들을 리어카에 실어서 하치장에 버리는 업무를 맡았다. 돌가루로 만든 타일을 담은 박스들은 무거웠다. 그것들을 옮기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때 내 나이가 열일곱인가 열여덟인가 그랬고, 지금처럼 그때도 그리 튼튼한 체질이 아니었으니...


아저씨, 아줌마, 형들 사이에서 꾸어온 보릿자루처럼 일하고 있는 나 자신이 어색했다. 제일 힘든 일은 깨진 타일들을 가득 실은 리어카를 하치장까지 끌고 간 후 리어카를 뒤집어서 타일들을 버리고 오는 일. 힘겹게 하치장까지 끌고 가는 것은 어찌어찌 했는데,  리어카를 뒤집는 일은 너무너무 힘에 부쳤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 "그것도 못하느냐"는 소릴 들을 것 같아서 하기 싫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용을 써서 리어카를 뒤집는 순간, 눈물이...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 친구들은 지금 공부하고 있을 텐데... 나는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세상에 홀로 동떨어진 느낌. 너무너무 서러웠다. 처절하고 비참한 내 모습이 너무나 서글펐다. 이 기억이 정말 잊혀지지 않는다. 이 일로 내가 깨달은 게 있다면 육체의 한계에 다다르면 눈물이 난다는 사실과 삶은 철저히 혼자라는 사실이다.


돌가루가 덕지덕지 묻은 작업복을 입고, 식당 배식 줄 - 공장 일이 자연스러운 일과였던 아저씨, 아줌마, 형들 사이 - 에 끼여 점심밥을 기다리던 기억도 난다. 작업복은 우중충한 파란색인가 갈색이었지 아마.


나는 그때  끝이 없는 아버지와 새엄마의 다투는 소리에 아주 진절머리가 났으므로 집을 나왔다. 전도사님의 사택(예배당)에 얼마간 얹혀살다가 자취를 시작했다. 그 후로 공장을 몇 번 옮기면서 형들 두 명과 같이 자취방을 썼다. 난방비가 없었는지, 난방비를 아끼려고 그랬는지, 둘 다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우리는 한 겨울에도 차가운 바닥에 이불을 깔고, 내복과 파카와 양말까지 입고 신은 채로 잠을 잤다. 이불 밖으로 내민 코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났다. 온수도 없는데다가 너무나 추웠기 때문에 세수도 안 하고 통근버스에 올라탔다. 어차피 공장에 가봐야 신경 쓸 사람도 없었으므로 거지꼴 같은 건 안중에 없었다. 그러다 일을 하다 보면 체온이 올라가 그럭저럭 지낼만한... 그런 하루하루의 반복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이 모든 것들이 추억이다. "타일공장에 안 다녀본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 "냉방에서 한겨울을 지내보지 않은 사람은 삶의 처절함을 모른다" 이런 말을 하면 꼰대 소릴 들을 것이다. 옛날에는 이런 꼰대 같은 생각도 있었지만, 지금은 나도 많이 바뀌었다. 그건 나만의 인생이고 추억일 뿐, 세대마다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이 있는 것이다.


내가 한창 사춘기일 때 '세상의 모든 직업을 경험하고 싶다. 노가다(막일), 청소부... 심지어 똥차(대·소변 수거차)까지도...' 이런 글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고생을 많이 하면 뭔가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 글의 힘이 무서운 걸까? 나는 수많은 직업을 경험해 보긴 했으나 아쉽게도 사회계급상(이런 표현을 써서 죄송하지만 우리가 겉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속으로는 의식하는 그 계급 말이다.) 위쪽으로는 거의 경험을 못 해보고, 주로 아래쪽으로만 많은 경험을 해봤다. 진정으로 두루 경험해 보려면 사회의 상층과 하층을 다 경험해 봐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도 이런 경험 덕분에 나는 웬만하면 외롭다고 질질 짜지 않고, 자살 같은 건 아예 생각지 않는 나름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어찌 보면 정말 무계획하게 살다가 반백살이 돼버렸는데, 그래도 자식 둘이 건강하게 장성했고, 마누라가 도망 안 가고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지. 하하


나는 노후 대책으로 문화교실 강사 같은 것도 생각하고 있는데, 풀어놓을 이야기 보따리는 정말 많을 거 같다.




그 시절 모든 것들이 지금은 다만 아련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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