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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Sep 24. 2020

나는 꼰대 아빠였어요

지금은 꼰대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에요

큰아들이 취직이 돼서 곧 독립을 한다. 큰아들은 나를 닮아서 까칠하고 - 바깥에서는 안 그런 것 같다 -  자기주장이 강한 스타일이다. 말대답을 따박따박 하기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큰아들이 싸가지가 없다고 여겼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많이 부닥쳤는데, 나는 아들이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해 자주 욱하고 분노했다. 우리 부자 문제 때문에 아내도 많이 힘들어했다. 아내는 늘 '둘 다 똑같다'는 말로 우리의 다툼을 결론지었는데, 나는 아들 앞에서 엄마가 그렇게 말함으로써 아버지로서의 내 권위가 더 실추된다고 느껴져 무척 싫었다.


나도 힘들었고, 아들도 아마 힘들었을 거다. 어쨌든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니 원죄가 나에게 있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성장 과정에서 아들을 별로 칭찬해 준 적이 없으니 아들도 비록 립서비스라도 아버지에게 좋은 말 하는 요령을 터득하지 못한 것 같다. 우리의 갈등이 극에 달한 때는 아들과 내가 둘 다 공무원 공부를 하던 약 2년 전이었던 것 같다. 아들은 그동안 쌓였던 걸 끝없이 쏟아 놓았는데, 나는 그 말들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다. 내가 다른 부모에 비해 아무리 해 준 게 없다지만,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먹고사느라 청춘을 즐기지 못하고 젊은 시절이 다 가버렸는데 그런 건 전혀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했다.


그 이후로 나는 아들과의 대화를 더욱 조심하게 됐다. 가능하면 말을 안 한다. 사소한 충고에서부터 영화나 정치 이야기까지 사소한 대화가 뇌관이 돼서 논리의 비약으로 발전하고, 급기야 감정싸움으로까지 가는, 그런 사태를 한두 번 겪은 게 아니기 때문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당신은 사랑을 못 받고 컸기 때문에 사랑을 줄 줄 모른다. 그것이 아들과의 갈등의 주원인이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라 딱히 반박하지 못한다. 나는 아들 눈치를 보며 말을 아끼는 시간 동안 훌륭한 부모들의 모습을 매체를 통해 보고, 지인들에게 조언도 구하면서 생각을 많이 했다. 아들이 비록 잘못이 있더라도 못난 내 모습부터 고쳐야 하는 것이 불변의 진리다.


예를 들어 큰아들은 좀 게으르고, 잠이 많은 편이라 고등학교 겨울방학 때부터 낮 12시가 넘도록 늘 잠을 잤다. 나는 힘들게 살아와서 그런지 그런 게으른 모습이 용납이 안됐다. 그래서 잔소리를 했지만, 공무원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면접일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잔소리를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참았다.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친구의 대답. "앞으로 평생 일을 해야 하는데, 어디 여행이나 다녀오라고 용돈은 못 줄망정 그건 아니다" 맞는 말이다. 나는 꼰대일 뿐만 아니라 쪼잔한 아빠였던 거다. 친구 말 듣고 침묵한다. 잘한 것 같다.


면접을 보고 나서도 변함이 없었다. 면접 보기 전에는 면접 준비를 할 게 있기 때문에 그렇다 쳐도 면접을 봤으니 더 이상 신경 쓸 게 없는데도 알바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여전히 새벽에 자고 낮 12시 넘어서 일어난다. 알바를 안 하더라고 도서관에 간다든지, 좀 나가서 활동적으로 생활했으면 좋으련만 엄마도 힘들게 일하러 다니는데, 나태해 보이는 모습이 맘에 안 든다. 이번에는 우리 책 <보통사람들> 공저자 중 한 분인 A 작가님께 상담을 요청한다. 이 분은 어릴 때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나와는 정말 다른 토양에서 자란 분이라 이 분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역시나 아무 말도 말라 하신다. 그러면서 "아들 입장에서는 나이 들어서 보통의 아버지와 다르게 음악 한다고 좌충우돌하는 모습도 탐탁지 않게 보일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역사지' 이 뻔한 말을 또 제대로 납득하지 못했구나. 실천하지 못했구나.


'나는 꼰대 아빠였어요'라고 과거형 썼다고 해서 지금의 내가 꼰대 아빠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자제하고 있을 뿐 여전히 입이 근질거린다. 아들의 마음을 다 헤아리고 이해하는 아빠도 아니다. 그래도 직설적으로 바로 내뱉지 않고 참으며, 나보다 나은 이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건 한 단계 발전한 모습 같다.


사실 큰아들은 겉으로 까칠할 뿐 심성이 착한 애다. 지 엄마에게 "엄마, 효도할게요"하고 카톡을 보냈단다. 공무원이 되면 복지카드도 엄마 드리고 어쩌고 저쩌고 했단다. 나는 그냥 묵언수행만 해도 최소 50점 이상의 아빠는 될 것 같다. 그나마 애들 어린 시절, 내가 민물낚시에 빠져서 애들을 많이 데리고 다녔기 때문에 최악의 아빠는 한 것 같다. 지금보다 더 가난했지만 아내나 나나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애들과 함께 야산에 눈썰매도 타러 다니고 했던 그 시절이 더 행복했던 것 같다.


나이 들어서 마누라에게 쩔쩔매는 남편이 왠지 멋있어 보인다. 그들이 정말 버럭 할 줄 몰라서 쩔쩔매겠나?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에, 또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그러는 거겠지. 최양락, 이덕화... 최수종은 뭐 말할 필요도 없고. 아들에게도 스스로 어깨 힘주고 권위를 내세우는 꼰대 아버지보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빠가 더 멋있는 것 같다. 악처도 남편을 인간 만들지만, 까칠한 아들도 아버지를 더 철들게 한다.


부모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얼떨결에, 무계획하게 아빠가 된 나는 앞으로도 배워야 할 것들, 수양해야 할 것들이 많을 것이다. 도인이 되려는 게 아니다. 최고의 아빠가 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꼰대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한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계속해야 할 내 숙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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