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신의 인도를 따라가다 보니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의 강의 동영상을 여럿 보게 되었다. 그가 역설하는 공간의 중요성을 들으며 요즘 귀촌에 꽂혀있는 나를 떠올린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강아지와 식물을 키우며 살고 싶다'는 내 나이 또래 누구나 가지는 소망이 결국은 공간에 대한 소망임을 자각하게 된다. 과거를 반추해 보니 50 평생, 내가 꾸민 나만의 공간 속에서 진정한 내가 되어 공간을 즐기며 산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난의 굴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게 집이란 먹고 자는 기능적인 공간이지 진정한 내가 되어 행복을 맛보는 심미적인 공간은 아니었다. 공적인 공간은 늘 배려라는 이름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독박 캠핑과 차박이 그렇게 유행하나 보다.
어쩌면 건축학자, 심리학자, 정리 전문가들이 일찍이 깨달은 사실을 뒤늦게 안 것일 테다. 자기만의 내밀하고 깊은 공간을 원하는 사람은 귀촌하거나 산속으로 들어가고, 늘 새로운 공간으로 내 삶을 채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세계 일주를 하는 것일까. 내 나름대로 공간을 분류해 보면 이렇다. 우선 시선에 들어오면 1차원적인 내 공간이다. 뷰 개념이다. 뷰 맛집 카페를 그토록 찾는 이유일 테다. 그 공간을 누비거나 접촉할 수 있으면 2차원적인 내 공간이다. 멋진 뷰를 감상만 하는 것과 공원의 산책길을 걷는 것은 다른 경험이다. 공간을 내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으면 3차원적인 내 공간이다. 마당에 식물을 심는다든지, 강아지를 키운다든지, 정자를 짓는다든지 하는 행위는 내가 그 공간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차원이 올라갈수록 공간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가고, 삶이 풍요롭고, 나의 심신은 행복해진다.
인간은 절대적인 시간 앞에 자유로울 수 없듯이 공간에도 자유로울 수 없다. 달마대사처럼 면벽 수련을 하면 깨달음이 올까? 모르긴 해도 깨달음이 오기 전에 돌아버릴 것 같다. 자연에 반하는 그런 자학으로 깨달음을 얻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는 버킹엄 궁전 같은 곳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공간에 대한 욕망을 이해하면서도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 평범한 서민인 내가 시간만 나면 국내 여행을 하고, 신축 도서관을 찾아다니는 욕망도 결국 새로운 공간 속에서 새로운 체험을 하며 행복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부가 아닌 이상 늘 여행만 할 수도 없고 직장이나 집 등 우리의 일상이 반복되는 공간이 늘 새롭기도 어렵다.
그러나 직업상 재택근무를 하는 내가 왜 자주 우울과 무기력에 빠지는지, 이전 직장인 군대 내부에서 왜 그렇게 갑갑함을 느꼈는지 이제 알게 되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물론 그 말은 권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실제의 자리(책상, 의자, 식탁)를 통해서도 사람은 변한다. 군대 내 회사 사무실의 내 책상 위치는 옆 사무실과 통하는 문 입구 옆 벽면이었다. 그 문을 통해 군대 간부들과 병사들, 우리 직원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다 보니 주의가 매우 산만했고, 나는 은연중에 내가 매우 낮은 지위에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던 것 같다. 나는 의자가 불편한 카페도 좋아하지 않는데 다른 인테리어가 좋아도 의자가 불편하면 왠지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안 들었다. 주인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지 않으니 표면적으로 보이는 인테리어라는 미끼에 낚인 기분이었다.
집의 분위기가 우중충하기 때문에 부부 싸움을 자주 하는지도 모른다. 옷도 나를 감싼 작은 공간이다. 남루한 옷을 입으면 막노동꾼 같은 기분이 들고, 산뜻한 옷을 입으면 기분도 산뜻해진다. 인테리어를 할 줄 모르는 어느 시골의 개인 카페는 천장에 형광등을 많이 설치해 밖에서 봐도 휑한 느낌의 밝은 공간을 만들어 버렸다. 요즘 그런 카페는 사람들이 거의 안 간다. 조명, 식물, 테이블, 찻잔 등을 이용한 멋진 카페들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 눈도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내게 멋진 공간을 선사하는 일은 돈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나처럼 돈 버는 재주가 없고,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을 많이 안 들이면서 멋진 공간을 찾고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가령 민물낚시의 경우 깊은 산중의 경치 좋은 저수지를 발견하는 것은 산과 나무와 수면과 햇살을 조용히 누리는 호사로 이어진다. 여행을 다닐 때 관광지나 핫 스팟을 피해 다니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무리 훌륭한 맛집이라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면 우선 정신이 없고 맛이 반감된다. 나는 그렇다. 한적하게 오롯이 내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좋다.
살아보니 삶은 결국 체험이다. 체험은 기억으로만 남는다. 옛날 집문서처럼 무슨 증서로 남지 않는다. 그런데 이 체험과 기억이 결국 공간에 대한 체험과 기억이라는 것이다. 옛 연인과 자주 갔던 카페, 자주 걸었던 산책로, 방과 후 자주 라면을 끓여먹었던 어릴 적 친구의 단칸방...
공간은 그나마 시간보다는 현실적이고 육체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듯 그런 따뜻함과 짜릿함을 내 삶의 공간 속에서 느끼고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제법 되는 듯하다.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사물의 이면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난 이제 겨우 공간이 삶임을 깨달았으니 더 공부하고 조금씩 실천해 보아야겠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했다는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가장 창의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가장 개인적으로 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결국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깨달음. 제11회 교보문고 출판 어워즈 '올해의 작가'에 선정돼 요즘 핫한 고명환 작가나 「창조적 시선」의 저자 김정운 박사가 여수나 욕지도로 가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