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는 1년 전 방통대 유튜브 강의 중 본인은 앞으로 '더욱더 사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전문을 옮기면 아래와 같다.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성취하는 삶보다는, 무엇을 더 이룬다 이런 것보다는 되게 좋은데 내가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어떤 것. 사람들을 많이 새로 사귀고 이런 것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 중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은 거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이라던가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이런 게 아니고... 그냥 아무 목적 없이 만나도 좋은 사람들이 있어요.
책을 읽더라도 '이 책을 읽어서 뭘 해야지, 뭘 하기 위해서 이 책을 읽어야지' 이런 생각으로 책을 읽는 게 아니고 '이 책이 재미있군. 비슷한 책을 또 읽어 볼까?' 그렇게 지금 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더욱더 사적인 삶을 살고 싶은 거죠.
평소에 하던 정치적인 행보와 작가로서의 행보 외에 요즘은 <유시민낚시아카데미>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낚시도 하러 다니는 걸 보니 과연 본인의 희망 대로 실천하고 있는 듯하다.
수년 전 교수직을 그만두고 일본 가서 그림을 배운 후 여수로 내려간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는 고기잡이배를 한 척 사서 고기 잡으며, 그림 그리며, 강의와 집필을 하며 살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 실패와 좌절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김미경 강사는 최근 「딥마인드」라는 책을 출간했다. 유시민, 김정운, 김미경 이들이 강의를 통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는 결국 자신의 내면이 원하는 삶을 살라는 메시지였다. 유시민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자기가 살고 싶은 하루를 살아라'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아주 단순한 메시지다.
공무원시험 낙방이라는 큰 실패 이후에 음악으로 삶의 방향을 선회한 후로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산다'라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내 마음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 안에서도 나는 여전히 역할놀이와 목표 지향적인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바람직하게 여기는 상 - 자상한 남편, 효도하는 자식, 듬직한 부모의 역할 - 이 본연의 나보다 의식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멋진 곡을 써서 멜론 순위권 안에 들어야 한다는 강박적인 목표에 어느 정도 얽매여 있다. 사회적 인간인 이상 죽을 때까지 역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할과 목표에만 충실하다가 가는 삶은 측은하고 불쌍한 삶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남편도 아빠도 아니며, 부모의 자식이라는 것이 평생의 종속을 정당화하는 자연의 법칙도 아니기 때문이다. 숲속의 나무 하나하나가 개별로 아름다울 때 숲 전체도 아름다운 게 아닌가. 나는 잡목이라서 옆에 있는 소나무를 위해 존재하는.... 그런 논리가 있나? '잡목'이라는 이름은 자본주의에 의해 붙여진 잘못된 이름일 뿐이다. 그 나무도 고유한 이름과 아름다움이 당연히 있다.
'더욱더 사적인 삶'을 사는 것이 그렇게 녹록지는 않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창세기의 이 저주 때문이지 몰라도 우리는 우선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저주를 비켜가는 부자들이 많은 걸 보면 신이 내린 저주가 모든 인간에게 차별 없이 내린 게 맞나 싶기는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계발서를 통해 열심히 살고 열심히 모아서 우선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그 후에 자유로운 삶을 살리라 다짐하지만 -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었지만 - 삶의 많은 부분이 운이다 보니 경제적 자유 따위가 내게 쉽게 올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에서, 돈도 별로 없고, 퇴사도 못하는 현재 상황에서 더욱더 사적인, 더욱더 나다운, 더욱더 자유로운 삶을 살라는 얘긴데... 어떻게, 무슨 수로 살란 말인가???
그건 아무로 모른다. 자신만 안다. 아니 사실 자신도 잘 모른다. 끊임없이 나의 내면과 대화하면서 찾아내고 밝혀내고 조금씩 실천해 봐야 한다. 무엇이 나의 가장 위해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즐거움인지, 신기하게 돋아나는 식물의 새순같이 내 마음에 새순이 돋아나게 하려면 삶에 어떤 처방을 해야 하는지 그건 어떤 박사도 알려줄 수가 없다. 본인이 찾아야 한다. 김정운 박사는 한국 사람이 죽을 때 '껄껄껄' 한다고 한다. '좀더 베풀고 살 껄, 용서할 껄, 좀더 재밌게 살 껄' 한다는 거다.
중년이 되어서 '진정한 나를 찾기'가 힘든 이유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은연중에 늘 강요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심지어 편하다는 친구 관계조차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양보하고 배려하며 나를 숨기고만 살았을 수 있다. 성공을 꿈꾸는 이유도 결국 훌륭한 역할자로서의 내가 완성되면 그것이 곧 나와 주위 사람들의 행복이 될 거라는 환상과 착각 때문이다.
짧디짧은 삶에서 우리는 곧 우주의 먼지가 될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의 내가 과연 나였을까? 나일까?' 생각해 보자. 내가 인지하는 나는 역할이라는 껍데기를 둘러쓴 내가 아닐까? 나의 알맹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나조차 모르는 게 아닌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껍데기를 벗지 않고 살아왔으니까. 이제 삶이 절반의 분기점을 넘으려 하거나 이미 넘었다면 껍데기를 벗고 우선 샤워를 한번 하고, 내 모습을 육안으로 살펴보자. '아, 나는 이렇게 생긴 생명체구나.'
숲속의 나무 한 그루가 그 자신일 때 본연의 아름다움을 뿜어내듯이 내가 진정한 나 자신일 때 우리는 차원 높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고, 그 즐거움과 아름다움의 향기를 주위에 퍼뜨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