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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Jan 06. 2021

보통이 특별한 이유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아이들이 다 독립을 한 덕에 오전에는 알바, 남은 시간엔 주로 작곡을 하는 생활을 이어가면서 요즘 부쩍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 60살까지 10년쯤 남았으니 노후 준비도 해야 하고, 곡을 팔아야 정식 작곡가라 할 수 있으니 곡도 팔아야겠고, 심하게 나빠진 위장을 위해서 건강관리(식단과 운동)도 해야 한다.


내가 마구 벌여 놓은 일들 - 유튜브, 오디오 클립, 브런치 등 - 도 심기일전할 때가 됐다. 유튜브 채널은 개설한 지 2년이 다 돼 가는데, 구독자가 겨우 100명이다. 지인들까지 합쳐서. 자작곡이라는 콘텐츠 자체가 황무지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오디오 클립(피아노 채널)은 확실히 내 콘텐츠를 좋아해 주시고, 자주 순위(100위) 안에 들지만 콘텐츠를 못 올려서 답보 상태다. 피아노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다.(핑계일 수도, 아니 핑계가 맞을 거다) 브런치는 글 잘 쓰는 분들이 하도 많아서 의기소침했었는데, 느리지만 구독자가 한 두 분씩 늘고 다음 메인에도 노출돼 봤으니 힘내서 해볼 만하다.


내 유튜브 채널에 뭔가 칼을 대야겠기에 대도서관이 쓴 <유튜브의 신>을 읽고 있다. 책 초반에 유튜버에 도전하려는 사람은 우선 퇴사를 하지 말라는 얘기가 나온다. 작사가 김이나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책에서 한 구절 인용. '자본을 더 모으고, 아이디어를 더 쥐어짜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면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완벽한 콘텐츠는 혼자가 아니라 시장 반응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건 내가 곡을 쓰면서 실제로 경험했다. 한 달 보름이 걸려 심혈을 기울인 '가면 속의 아리아'란 곡은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성악을 전공했던 분을 모시고 녹음실까지 빌려가며 돈도 제법 투자한 곡이다. '산허리의 고목아'란 곡은 4일 만에 완성했고, 집에서 녹음했고, 내가 불렀다.(주위에 작곡하지 말라는 사람은 없는데, 노래는 니가 부르지 말라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ㅎㅎ) 이 곡으로 음원유통사와 계약도 하고, 첫 정산금 12,555원이 12월 말에 입금됐다. 관심을 보이는 메이저 가수들의 매니저와 카톡을 주고받기도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몰빵 한다고 잘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잘 되는 것, 잘 풀리는 건 운이 크게 작용하므로 잘 되려고 용쓰고, 기 쓰고, 악다구니를 쓰는 것보다는 콘텐츠 소비자와 꾸준히 소통하면서 평상심으로 끈질기게 계속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몰빵을 해야 성공한다'는 나의 강한 아집 - 아집인 줄 몰랐으니 지금껏 진리라고 확신했다. - 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이런 생각이 오늘 문득 들었다. 중2 때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한 번 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식음을 전폐하는 수준으로 시험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전교 60~80등 사이였던 내 등수가 순식간에 6등이 되는 걸 경험한 이후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고등학교를 중퇴했기 때문에 공부로는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한 셈이다.  두 달간 반짝 전교 6등을 해본 게 전부였던 것이다. 두 달간 너무 심하게 공부를 하고 나니 지쳐서 생활 스타일이 다시 원래의 게으른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반면에 그 당시 전교 1,2 등 했던 친구들은 다 서울대에 갔다. 1등은 하루도 빠짐없이 예·복습을 하는 스타일, 2등은 타고난 천재형은 아니었지만 록키 영화 시리즈를 무수히 반복해 보며 꾸준히 노력하는 형이었고, 재수해서 결국 서울대에 갔다.


요즘 유튜버 신사임당 채널을 보고 있으니, 힘든 알바(4시간도 힘든, 게으른 나)를 그만두고 빚을 내서 쇼핑몰을 해볼까 하는 유혹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내가 컴퓨터를 모르나, 인터넷을 못 하나, 성격도 꼼꼼하니까'하면서 말이다. 사실 일하기 싫은 것이다. 하지만 작곡가 선배인 서기준 님이나 도나 님도 작곡에 몰빵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알바와 병행하라고 한다. 무수한 해외 작곡가까지 경쟁자가 된 K팝 시장에서 몇 년 동안 음악만 해서 승부를 내겠다는 생각은 어리석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곡을 10년 동안 써도 안 팔리려면 안 팔릴 수 있는 거지. 내가 열심히 하면 무조건 된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어찌 보면 이건 오만이다.


나는 컴퓨터 가게를 폐업하고 음악 카페를 창업할 때도 걸려오는 고객 전화도 캔슬해가며 카페 인테리어에 매달렸다. 어차피 폐업할 거니까, 음악 카페가 잘될 거니까 그런 수익들이 푼돈처럼 여겨졌다. 음악 카페를 말아먹고, 건강차 관련 푸드트럭을 시작할 때도, 이태리제 병 등 고급 자재와 재료들을 쇼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고 있으면 마치 그것이 잘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내 마음에 들게 인테리어를 하고, 마음에 드는 용기와 테이크아웃 컵 등을 사면 마치 소풍 전날 준비물을 쌀 때처럼 설레고, 모든 게 잘 될 것 같다. 하지만 여러분과 내가 잘 알듯이 고객은 냉정하다. 고객은 내 기분을 따라, 내 수준을 따라 움직이는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성경에 나오는 이 말은 보통 겸손을 강조할 때 쓴다. 이 말을 '특별해지려고 애쓰는 자는 평범해지고, 꾸준히 평범한 자는 충분히 특별해질 수 있다.'란 말로도 바꿀 수 있겠다. 꾸준하고 평범하게 우리를 사랑해 준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특히 나와 같은 사람이 깨우쳐야 하는 사실. 




평범함의 꾸준한 연속이 특별함의 씨앗이고, 특별함 그 자체라는 건 누구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가 쉽게 망각하는 심오한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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