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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딴따라 Nov 24. 2021

당신은 영웅이다.

위대한 1위와 어느 죽음

코로나 패닉이 2년째다. 셧다운과 회복 가능성을 오가면서 희망도 피다가 지기를 반복했다. 전 세계가 뛰어든 백신접종은 봉쇄만으론 공멸될 것을 자각하고 위드코로나라는 새 국면을 열었다. 살고자 하는 절실함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인공지능과 바이오 등 4차 혁명은 속도전에 돌입했다. 살아 생전 영화에서 보던 저런 걸 겪겠어 했던 스마트 기술은 일상화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우리의 심리 속도다. 전염병으로 기술은 도약했지만 언제든 세상이 손쓸 수 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초현실적인 무기력을 경험했다. 신종플루나 메르스, 사스때처럼 곧 회복될 거라는 믿음은 속수무책 배신당했다. 가장 진화한 영장류로써의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느끼자 '존재'의 불안이 커졌다.

     

우리의 삶이 뭉개진 사태의 원인이 분명히 있을테고 그것만 없애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팩트와 의혹사이에서 자유로운 일상 불가라는 잔혹하고 모순된 현실때문에 우리는 분노하고 절망한다.     


SNS덕에 '만남'이라는 귀찮은 절차없이 스펙트럼을 넓힌 관계망은 핸드폰을 닫는 순간 홀로 있음이라는 공황을 준다. 영상과 문자로 제한된 소통은 우리를 혼자인듯 혼자아닌 혼자뿐인 관계인으로 만든다. 허전함은 불완전한 소통을 시작으로 내일은 ‘알 수 없음’이란 허망함에서 극에 달한다. 미래는 꿈을 꾸는 일이다. 꿈은 오늘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낄 때 가능하다. 아침마다 눈을 뜨고 확진자 수를 계수하며 하루를 좌지우지하는 순간 꿈은 사라진다.




최근 뉴스 메인을 장식한 인물이 있다. 현대사의 날카로운 날이었던 그의 죽음을 공공연히 비통하는 국민은 적다. 단죄와 용서 어느 매듭도 짓지 못한 채 끝난 허망한 죽음은 앞으로 역사가 두고 두고 풀어야한다. 어느 죽음이든 함부로 가볍다 무겁다 할 수 없지만, 죽어서도 그를 향한 무수한 시선을 고인은 살아생전처럼 꼿꼿하게 감당할 수 있을까. 억울한 죽음이란 말은 들어봤지만 고인을 붙잡는 산 사람의 무수한 억울함이 가득한 아이러니라니... 전방고지에서 백골로라도 통일 조국을 보고싶다는 그에게 과연 국가란 어떤 의미였는지 묻고 싶다.  

          

사회 지면은 사건과 사고가 넘친다. 쎈 기사의 숲을 헤치다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기적이 보인다. 마트에서 쓰러진 노인을 살린 주민과 불이 난 교통사고 차량에서 사람을 구한 시민이 있다. BTS(방탄소년단)는 아시아인 최초로 아메리칸뮤직어워드 대상을 수상했고, 기생충, 미나리 영화에 이어 오징어 게임과 지옥이 단숨에 넷플릭스 1위에 올랐다. 



동양이라하면 중국 아니면 일본을 떠올리던 서양은 한국의 문화, 역사, 콘텐츠에 초관심이다. 지난달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주제로 컨퍼런스를 열었고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한국어 단어 26개가 올라갔다. 기업의 자본과 대형 프로덕션으로 가능할 것 같던 한국의 글로벌 브랜드는 개인 파워로 꽃을 피웠다. 전염병에 잠긴 시간을 보내기위해 쏠린 문화예술 콘텐츠에서 한류는 가히 전세계를 제치고 무궁한 창의력으로 독보적인 파워를 보였다. 인종, 계급, 권력이란 조건을 무시한 미디어 세계와 팬데믹은 비로소 한국의 위대한 한국다움을 드러냈다.

         

전통과 변화가 경계없이 융합해 새 것을 창조하는 게 익숙한 민족, 국난과 재난에서 분열하지 않고 불같은 결집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게 전문인 민족이다. 풀뿌리 민중 역사에서 철학을 체득하고 자원없는 땅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과 분단국가로써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나라다. 안주할 내일은 적고 개척할 미래는 아주 많다. 그럼에도 암담한 현실에서 풍류와 풍악을 읊는 민족성은 빛나는 소생력을 지녔다.

우리는 어려울 때마다 영웅을 만든다. 우리의 영웅은 우리 자신이다. 위태로운 상황에서 화양연화를 피울 주인공은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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