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치킨, 그리고 기억의 지층

by 바나나 슈즈

우리 기억 속에는 종종 아주 사소한 것들이 깊게 침전되어 있다.


나에게는 양념치킨 한 마리가 그것인데. 8천 원짜리 통닭 한 마리가 어떻게 우리 다섯 식구를 행복하게 했었는지, 아이들을 위해 치킨을 주문할 때면 문득 문득 궁금해진다.



어릴적, 특별한 날이면 - 거의 연중행사에 가까운 - 치킨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거의 날아갔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 시절 치킨은 지금처럼 배달앱으로 주문하는 일상의 음식이 아니라, 특별한 날에만 허락된 사치였다. 주인 아주머니는 내 앞에서 직접 튀김옷을 입힌 닭을 기름에 넣었고, 그 시간 동안 나는 가게 안을 서성이며 기다리는 것조차 즐거웠다.


분홍색 대야에 붉은 양념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마치 연금술과도 같았다. 고추장과 간장, 설탕, 그리고 여러 가지 비밀 재료들이 섞여 만들어지는 양념은 아주머니의 손끝에서 마법처럼 완성되었다. 금빛으로 튀겨진 닭이 그 양념 속으로 빠져들 때면, 입안에 침이 고였다. 튀김옷과 양념이 만나는 순간의 촉촉한 감촉과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향기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된다.


알루미늄 호일을 깐 종이 상자에 담긴 치킨과 함께 따라오는 것들. 투박하게 썰어낸 양배추에 케첩과 마요네즈를 뿌린 샐러드와 시원한 치킨무. 그것들은 '서비스'라고 불렸지만, 사실 치킨 경험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양배추의 아삭함과 치킨무의 시원함이 없었다면 양념치킨의 맛은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의기양양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작은 접시들을 꺼내 놓으셨다. 다섯 식구가 둘러앉아 치킨 한 마리를 나눠 먹는 것은 일종의 의식과도 같았다. 우리들은 날개와 다리를 선호했고, 아빠는 그 속에서도 닭다리 하나를 조용히 집어 드셨다.


그런데, 이상하다. 엄마가 무엇을 드셨는지 도대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양배추가 제일 맛있네"라고 말씀하시며 샐러드를 드시던 모습만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나는 그 양념치킨을 먹고나서 배고프다고 부족하다고 느낀 기억이 없는데. 한 마리로도 충분했는데.




시간은 천천히 흘러 계절이 바뀌고, 그 계절이 쌓여 나이가 되었다. 어느덧 내가 중년이 되었고, 부모님은 노년에 접어드셨다.


어버이날이라, 오랜만에 전화를 드렸다. 마음 한켠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봄날의 꽃잎처럼 흩날렸다.

"엄마, 용돈 보냈어. 오늘은 밥하지 말고 맛있는 거 사먹어."

"고마워. 치킨이나 시켜 먹어야겠다."

엄마의 대답이 의외였다.


"엄마, 치킨 좋아해?"

"그럼, 내가 제일 좋아하지."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일렁였다. 엄마도 치킨을 가장 좋아했다니. 그런데 우리 다섯 식구가 한 마리를 나눠 먹을 때, 엄마의 접시에는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양배추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은 정말 양배추가 맛있어서였을까, 아니면 우리들에게 더 많은 치킨을 양보하기 위한 배려였을까.


시대는 변했다. 오늘날의 식탁에서는 '1인 1닭'이 당연한 풍경이 되었다. 과거 8천 원이던 치킨은 이제 두 배, 세 배의 가격으로 올랐고, 다양한 맛과 브랜드로 우리의 선택을 기다린다. 닭의 크기가 줄어든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욕심이 커진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마도 둘 다는 아닐 것이다. 그때의 닭과 지금의 닭은 크기가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까. 달라진 것은 우리의 마음속 풍경이다. 과거에 한 마리의 치킨으로도 충분했던 이유는 함께 나누는 기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것은 물질적 풍요보다 정서적 충만함을 더 소중히 여기던 시간의 흔적이다.




엄마는 어쩌면 치킨 한 조각도 제대로 드시지 못했을지 모르겠다. 양배추 샐러드를 맛있게 드시는 척하며, 자신의 몫을 줄여 우리에게 더 많은 부분을 양보했는지도. 그것이 가진 것 없는 엄마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사십 중반이 넘어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치킨은 그저 음식이 아니라 사랑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어버이날,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서 여전히 치킨을 좋아하는 소녀의 설렘이 느껴졌다. 이제는 내가 엄마에게 온전한 한 마리의 치킨을 선물할 차례다. 그리고 그 치킨에는 엄마가 우리에게 건네주었던 것과 같은 사랑이 담겨 있을 것이다. 기억의 지층에서 발견한 양념치킨 한 마리의 의미가, 오늘 나를 조금 더 성숙한 자녀로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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