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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스플릿 Aug 07. 2023

엄마의 팔다리가 가늘어져 간다

주말에 엄마를 찾았다. 혼자 계시는 엄마를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찾아뵙는다. 말동무가 되어 주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같이 해먹기도 한다. 자주 전화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가야 나도 마음이 편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이제 4주기가 되어간다. 혼자 사는 게 이제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인간은 늘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존재이다. 아들이 오니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다며 엄마의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북적거리는 집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사람이 있어야 사람 사는 맛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둘이 토종닭을 사다가 삼계탕을 해 먹었다. 여름 감기에 걸려버린 엄마는 매우 힘들어했다. 사실 지난주에 갔어야 하는데 감기가 옮을까 봐 오지 말란다. 엄마는 그렇게 항생제를 먹어가며 일주일을 견뎠다. 일터에도 3일간이나 이례적인 휴가를 내고 푹 쉬었다. 겨울보다 여름이 나이 든 사람들에게 더 힘든 계절일지도 모르겠다.


뜨끈한 닭죽을 먹고 나니 잠이 쏟아진다. 엄마 집에게 가면 이상하게 잠이 온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자도 자도 끝이 없다. 그래도 푹 자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저녁 9시에 티브이를 보다 곯아떨어져서 아침 일찍 일어나 버렸다. 화장실에 다녀와선 엄마 방을 지나쳤는데 침대 위의 엄마는 너무나 말라버린 모습이었다. 아들 둘을 번쩍 들어 키우던 엄마는 없어지고 마치 아이 같이 작아진 엄마만이 놓여 있었다. 살이 빠지지 않는다고 툴툴거리던 엄마였는데 이제는 뼈가 드러나게 말라가고 있었다.


예전에 할머니들과 놀면서 손을 잡고 뼈를 오밀조밀 만졌던 것이 생각난다. 살집은 어디 간지 다 없어지고 얇게 늘어진 피부와 뼈만 만져졌다. 우리 엄마도 어느새 할머니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은 우리 엄마도 점점 세상과 멀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생명의 태어남은 동시에 두 가지 미션을 생성한다. 그 하나는 먼저 부모에게 떨어진다. 세상에 나라는 존재를 적응시키는 것. 험난 세상을 이겨내며 살아갈 수 있게 아주 오래도록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만든다. 평생 숙제를 안고 그렇게 살아가게 만든다. 또 하나의 미션은 세상에 어느 정도 적응하게 된 자식에게 부여된다. 나를 키워준 부모를 다음 세상으로 보내주는 것. 엄마가 다시 먼저 간 아빠와 더 먼저 갔던 엄마의 엄마를 만나게 보내주는 것이다.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 역시 자식이지만, 부모의 인생을 완성시켜 주는 것 역시 자식의 몫이다. 자식에게도 평생 숙제가 부여된 셈이다. 잘 보내주는 것이 자식의 도리일 것이다.


아이를 낳고 가족이 구성된다는 것에는 생각보다 많은 의미와 헌신의 역사가 살아 숨 쉰다.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만들고 또는 가족을 붕괴한다. 의미를 다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이치가 참 오묘하고도 신비롭다. 세상을 완전히 깨닫게 하는 것은 바로 탄생과 죽음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도 이제 엄마를 보내줘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되든 나는 담담히 그를 보내줄 수 있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 순간 남겨진 시간을 소중히 사용해야 한다. 절대 후회하지 않도록 충실하게 시간을 보내면 된다.


시간의 흐름을 내가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리고 그 때라는 것을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매일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됨을 알기에 그렇게 슬프거나 괴로워할 필요는 없겠다.


그래도 가늘어져 가는 엄마의 팔다리는 조금 슬프다. 아주 못한 것도 아니지만, 아주 잘한 것도 아닌 아들 된 내 모습을 반추하게 된다. 아직은 다음 세상에 엄마를 보낼 자신이 없는 것 같다. 조금은 더 행복해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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