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있어.
흔들리는 술잔 사이로 그의 진심이 일렁이고 있었다.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신입 2년 차인 나는 신나게 술을 들이붓고 있었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지. 술 먹는 사람이 일도 잘하지. 암 그렇고 말고. 젊음과 패기와 무모함을 안주 삼아 그날도 달리고 있었다.
꼭 이럴 때면 엄마의 전화가 걸려온다. 어디서 나를 지켜보는 게 분명하다. 민재야 술 조금만 먹어라, 하는 엄마. 어 알았어, 하는 아들. 걱정으로 걸려온 전화를 건성으로 받아넘기고 나는 다시 회식 자리로 향했다.
이 테이블에서 저 테이블로 간다. 잔을 돌리고 술병을 돌린다. 나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어느새 초록병이 바닥을 향하고 있다. 이모 여기 소주 하나요. 있는 말 없는 말 죄다 꺼낸 대화를 잇는다. 술잔이 비지 않게 오디오가 비지 않게.
목소리가 커진 걸 보니 꽤 마신 게 분명하다. 쉬어갈 겸 사람이 적은 테이블에 털썩. 그리고 먼저 앉아 계시던 부장님께 권하는 나의 술잔. 에구 부장님 고생이 많으시죠. 사실은 항상 같은 레퍼토리다. 상대가 정말 고생하는지 안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쭈욱 들이키고 받은 잔을 돌려주시는 부장님. 그리고 짧지만 굵은 그의 한 마디.
잘하고 있어.
밑도 끝도 없는 그 말에 난 움직일 수 없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두운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느낌이었다. 거기에는 나와 부장님만이 있었다. 흔들리는 술잔 사이로 그의 진심이 일렁이고 있었다.
사실 난 불안했다. 일을 하곤 있었지만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신입은 그저 월급이 나오니 받았을 뿐이다. 그동안 불안은 점점 몸집을 키웠다. 이 불안을 숨기기 위해 그렇게 마시고 그렇게 소리를 높였는지도 모른다. 부장님은 이미 알았는지 모른다.
잘하고 있어. 다섯 음절에 완전히 녹아내린 신입은 그동안의 애씀을 보상받고, 지금처럼 하면 되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다른 이들도 그의 다섯 음절에 녹아내렸다는 사실을.
부장님도 항상 같은 레퍼토리 일지 모른다 생각했다. 그래도 괜찮다 생각했다. 테이블이 무대가 되었던 그때를 떠올렸다. 일렁이던 그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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