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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Apr 12. 2020

혼자만 가방을 던지진 않았다

1996년, 인천

선생님은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교실문이 빠르게 열리고 닫혔다. 결국 선생님은 교실을 나갔다. 시끄러웠던 교실은 이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칠판 앞엔 아직 선생님의 향수 향이 흐릿하게 남아있었다.


10살의 가을을 막 맞이한 아이들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교실을 나가기 전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너희가 힘들어 다른 학교로 간다고 했다. 교장선생님께 이미 말씀도 드렸다고 했다. 선생님이 거짓말을 하실 리 없다. 교장선생님도 허락한 마당에 누가 선생님을 막을 수 있겠는가.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저희가 잘못했어요 라는 말도 너무 늦었다. 선생님이 없는 교실에서, 한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앞 뒤 친구들이 훌쩍거렸고 울음은 쉽게 번져나갔다. 오래지 않아 3학년 6반 모두가 울었다.


울던 민재는, 자리에서 일어난 가방을 들었다. 최대한 높이 들었다. 교과서가 가득해 힘에 부쳤지만 제 머리보다 높이 올린 가방을 마룻바닥에 내리꽂았다. 아식스 책가방은 교실 바닥과 만나 쾅 소리를 내었다. 이제 막 전학 온 그 아이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전학 왔더니 학교가 이게 뭐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엎드려 마저 울었다.


쾅! 몇몇 남자 애들이 일어나 같은 행동을 했다. 쾅! 그들은 심각했다. 쾅! 그들은 후회의 눈물인지 두려움의 눈물인지 모를 것들을 흘리고 있었다. 끝내 선생님은 들어오지 않았다. 울다 지친 아이들은 하나둘씩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민재는 집으로 걸어가는 20분 내내 울었다. 엄마는 울면서 들어온 어린 아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얘기를 들은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 아이를 다독였다.




주말을 지난 월요일. 월요일은 전교생이 운동장 조회를 하는 날이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3학년 6반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평소에 서던 자리에 섰다. 구령대 마이크 소리에 맞춰 앞으로 나란히를 했다.


그런데 저 앞에서 선생님이 나타났다. 다른 학교에 갔다 주말 간에 돌아오신 건지, 거짓말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앞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선생님이 가까워지자 민재는 씨익 웃었다. 선생님도 아이의 눈을 맞추며 씨익 웃었다. 코 끝을 스치는 선생님의 향수 냄새는 여전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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