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재 Apr 15. 2020

전학을 갔다 그뿐이었다

전학이 싫었다. 새 집은 좋았지만 새 학교는 싫었다. 친구들과 헤어짐이 아쉬웠고 다른 친구들과의 만남은 두려웠다. 얼마나 싫었던지, 그 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이전 학교에서 새 학교로 가는 아빠의 차 안이었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쏟아지다 맺힌 차창 밖 빗방울들이 내 눈물과 비슷하단 생각을 했다.


새로운 친구가 전학 왔어요.


선생님이 나를 칠판 앞에 세우셨다. 선생님의 전입생 소개 멘트가 끝나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안녕. 나는 주원초등학교에서 전학  서민재라고 . 친구들아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큰 박수소리. 나는 곧 빈자리에 앉았다. 내가 씩씩한 어린이가 된 것 같았다. 긴장한 탓에 지나치게 큰 소리로 말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중에 쓸 용기를 그때 다 썼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의 표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시고 복도로 향하지 않으셨나 싶다. 그날. 특별할 것도 없던 나는 전입생의 특혜로 친구들의 관심과 질문 세례를 받았다. 시작이 나쁘지 않네, 라고 했던가. 낯섦과 새로움에 취했다. 나를 토닥이며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준 엄마는 까맣게 잊은 채.




나중에 안 이야긴데, 엄마는 나를 인계한 그 교실 복도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고 한다. 처음엔 내가 잘 들어가나 싶어서, 다음엔 선생님이 복도로 나오셔서, 그다음엔 선생님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서 계셔서.


선생님은 무엇을 기다리고 계셨을까. 엄마도 나도 성인이 되어 이 얘기를 나누었을 때, 나는 전학 원서라고 했고 엄마는 돈봉투라고 했다. 선생님이 말없이 서 계셨던 이유는 정말 무엇이었을까?


소중한 큰 아들을 위해 떡하니 두툼한 돈봉투를 내밀지 못한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기대한 건지 바란 건지 멍 때린 건지 알 수 없는 선생님의 행동 또한 원망하지 않는다. 엄마는 그 선생님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가졌고, 나는 선생님이 좋았다. 그뿐이었다.


그랬다고 한다. 정확한 건 알 수 없다. 알고 싶지도 않다. 단지 그 시대는 촌지가 이상하지 않은 시대였고, 엄마는 돈봉투 한번 없이 두 아들을 키우셨다. 그뿐이었다.


어른들의 일이야 어쨌든, 나는 새로운 학교에 잘 적응했다. 그 선생님께서는 나를 곧잘 칭찬해 주셨다. 친구들도 대부분 좋았다. 새 학교는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다. 그뿐이었다.




|커버 사진|

Pixabay

Joshua_seajw92




https://brunch.co.kr/@banatto/42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만 가방을 던지진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