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안 마십니다
딱 일 년만 버티면 돼.
오래전 술을 끊은 절친이 술에 찌들어있던 내게 건넨 말이다. '절주 선언' 초반에는 주변의 술 권유로 힘들지만 일 년만 참으면 주변에서도 '술 안 먹는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얘기였다. 대리운전을 부를 수 없어 누운 절친의 침대에서 나는 결심했다. 술을 끊자고.
오늘은 한 잔 하지?
아니, 몇 번을 말해야 돼. 안 먹는다고! 일 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지독하게 끝까지 권하는 사람은 있었다. 이쯤 되면 권유가 아니라 강요라는 걸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많이 나아졌다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술을 권하는 사회다. 지나친 친절이다. 없던 술친구도 만드는 그들의 능력은 가히 초능력에 가깝다.
원래 술을 먹어야 생기는 거야.
임신 준비 중이라서, 아내와 한 약속 때문에 못 먹는다고 하면 이런 말이 돌아온다. 남의 상황과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들의 언행은 폭력적이다. 정말 술상을 뒤집고 싶다.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은 정말 함부로 대하고 싶다.
오늘은 한 잔 해도 돼.
아니 그걸 왜 지가 결정하냐고. 안 마신다고. 안 마시는 이유가 있다고. 아니다. 내가 안 마시는 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야? 네가 이유 없이 마시듯, 나도 이유없이 안 마실 권리가 있는 거야!
김 대리, 한 잔 해.
돌이켜보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술을 많이도 마셨다. 어려서 보던 드라마 속 회식은 낭만적이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결국 술 먹고 돌아다니다, 행복하지 않은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술을 끊었다.
술 안 마십니다.
술을 멈추고 나서야 직장 생활과 개인의 발전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젠 당당하게 말한다. 거절 못하는 나지만, 술 없인 회식에서 아무 말도 못하는 나지만, 이것 만큼은 확실하게 한다. 술 안 마십니다. 제게 술은 씁니다. 제게 술은 결코 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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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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