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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Apr 11. 2020

묘를 쓰다

미리 쓰는 유언장

나는 오늘 죽기로 했다.


어느 피디가 '죽음 체험 센터'를 방문했다. 영정 사진을 찍고 유서를 쓴다. 저승 계단을 올라 어두운 관에 눕는다.  산 사람들이 제 발로 관에 들어간다. 저승사자는 관 뚜껑을 닫는다. 쾅. 못이 박힌다. 텅텅텅.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진다.


취재 피디는 말한다. 죽음 체험을 통해 남은 삶을 새롭게 설계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죽음을 통해 더 잘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죽음은 어떤 힘을 갖고 있다. 그 힘은 우리를 경건하게 한다.


완전한 어둠. 경험하지 못한 적막. 관 속에서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관에 누운 나는 어떤 시간을 경험할까? 나의 육신은 얼마나 공허해질까?


눈을 감고 나의 죽음을 그려본다. 나의 영정 사진이 있는 나의 장례식. 누군가는 눈물을 보이고 누군가는 조용히 육개장을 뜬다. 그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저기, 누군가 나의 묘를 쓰고 있다. 관 위로 흙이 덮인다. 툭. 흙의 무게가 더해진다. 투둑. 어느 정도 흙이 채워지자 원을 그리며 그 흙을 밝는다. 땅이 다져진다. 다시는 나올 수 없다. 엉엉 우는 가족들이 보인다. 목이 매여 생각을 멈춘다.


죽음 앞에 선 모든 것이 의미를 상실한다. 돈, 명예, 성공은 아무 의미가 없다. 반대로 죽음 앞에서는 작고 당연한 것들이 소중하다. 내 곁이 되어주는 사람들. 평범한 일상. 어제 먹다 남은 와인까지. 우리는 죽음에 가까워야 비로소 삶의 중요한 가치를 깨닫는다.


종종 죽음을 떠올려 볼 것이다. 내가 지금 가진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지지 못하더라도 숨 쉴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가치로운지 복습할 것이다. 죽음 앞에서 사랑할 힘과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죽음 체험을 마친 피디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나는 오늘 살기로 했다.

    




|커버 사진|

Pixabay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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