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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Dec 15. 2019

반말의 빈도

미용실에서(2)

자주 가던 미용실이 있었다. 집 근처에 있는 동네 미용실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특별할 것 없었다. 이 곳의 매력은 문을 열고 들어가야만 알 수 있었는데, 바로 사장님의 화끈한 성격과 입담이 그것이었다.


우리가 미용실을 선택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가격, 미용사의 실력, 분위기 등. 하지만 최근엔 미용실도 프랜차이즈화 되면서 이런 기준들이 상향 평준화된 느낌이다. 단, 동네 미용실은 얘기가 조금 다르다. '헤어 디자이너' 보다는 '미용사'를 찾고, '펌'이 아닌 '파마'를 주문하는 그런 미용실 말이다. 이 곳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머리 미용은 물론 대화의 장이 펼쳐지는 곳이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동네의 온갖 소문과 풍문이 퍼져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조심스레 추측을 하자면) 이러한 경향은 지방으로 갈수록 짙어진다. 머리방인 동시에 대화방인 동네의 미용실. 기능이 이렇다 보니, 이런 곳은 미용사의 역할과 매력이 중요하다. 손님들과 적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필수이다. 눈과 손으로는 손님의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귀와 입으로는 대화를 이어나가는 멀티태스킹 능력은 기본이다.


아무튼 내가 찾던 미용실은 전형적인 동네 미용실이었고, 중년의 여자 미용사는 특유의 호탕함이 있었다. 어느 누구와도 거침없이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친화력과 입담! 나는, 사글사글함보다는 대범함에 가까운 친화력을 지닌 그 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처음 그 곳을 방문했을 때, 중년의 미용사는 내게 반말을 사용했다. 반말을 들어 기분이 나빴다는 게 아니다. 누가 보아도 미용사는 나보다 연장자였고 그녀의 반말은 친근함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게 '학생'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30대 중반을 향하고 있던 내게 '학생'이라는 호칭은 달가웠다.


30대 직장인이자 성인으로서 반말을 듣기 어려운 요즘이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내게 함부로 반말하는 사람은 없다. (나와 아내는 서로 존칭을 사용한다!) 그런 내게 그녀의 반말은 꽤 유쾌한 경험이었다. 어른이 되어 내 존재와 자유를 존중받게 되었지만, 동시에 기대되는 역할과 책임이 주어졌다.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 중 하나는 내게 반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더욱 그 반말이 달가웠다.


그렇게 한동안 기분 좋은 반말을 들으며 미용실을 다녔다. 내가 진짜 학생이 아니란 걸 알았지만 여자 미용사는 나를 편하게 응대했다. 그녀의 반말은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그러던 중 나와 중년 미용사 사이에 어떤 변화가 생겼다. 변화의 계기는 나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내가 감사의 표시로 선물을 들고 미용실에 방문한 날이었다.


 "안녕하세요."


 "어, 젊은 오빠 왔어?"


 "네, 오늘은 제가 선물하나 들고 왔어요. 이거 받으세요."


 "이거 뭐야? 웬 책이야? 자기 책 많이 읽나 봐?"


 "아… 제가 이번에 책이 나와서요. 인사 드릴 겸 한 권 챙겨 왔어요"


 "어쩜! 자기 책도 써? 작가야?"


그리고 머리 손질이 이어졌다. 그 분은 내가 작가인 줄 몰랐다며, 몰라봤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가 작가로 데뷔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란 건 아니었다. 내 책은 감사의 의미로 준비해 간 작은 선물이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칭찬과 관심은 그날의 대화 주제였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그 미용사는 내게 사용하는 반말의 빈도를 서서히 줄여나갔다.


반말의 빈도가 줄어드는 만큼, 내가 그 분께 받았던 편안함 역시 줄어들었다. 그 분과 나 사이에 전에 없던 얇은 벽이 생긴 느낌이랄까. 나의 신분을 밝힌 일이 예상치 못한 관계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이전처럼 편안한 반말을 듣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반말을 다시 '주문'할 수도 없었다.


반말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이미지는 사뭇 상반된다. 좋은 면을 본다면 친근함, 편안함이 있을 것이고 나쁘게 생각하자면 무례함, 막 대함이 떠오른다. 상황에 따라 반말은 인간관계의 윤활유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일을 망치기도 한다. 무작정 반말이 좋다, 나쁘다는 가치 판단을 하고 싶지는 않다. 연장자가 아랫사람에게 반말을 하는 게 옳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반말의 역할과 정당성은 특정 상황을 공유한 사람들이 결정할 몫이다. 내 경험 상, 체감 상 그렇다.


다만 반말의 긍정적인 면을 높이 사는 한 사람으로서, 격식보다는 비격식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편안함으로 기억되고 싶은 사람으로서 '작가 커밍아웃'은 내 불찰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 분을 위한 선물이었는지 나를 위한 선물이었는지도 생각해본다. 혹시라도 내 불찰로 인해 그 대범한 미용사분께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한다.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그 미용실을 찾는 나의 발길이 조금씩 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족하지만 <일간 서민재> 연재를 시작합니다. 작가라는 호칭이 부끄럽지 않게 아무튼 뭔가 쓰려 합니다.

*매일 또는 격일 간격으로 쓰려 합니다. <일간 서민재>지만 <격, 일간 서민재>가 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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