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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Dec 16. 2019

말과 언어의 불완전성에 대해

미용실에서(3)

달에 한 번 미용실에 다녀온다. 사실 귀찮다. 그래도 다녀온다. 거울 속 나의 덥수룩함을 나도 참지 못하는 시기가 꼭 오기 때문이다.

다녀와선 다녀오길 잘했다 생각한다. 다녀오면 얻는 게 꽤 있기에 그렇다. 미용실은 내게 삶의 다양한 모습(타인)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거울 속 스스로(자신)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자신과 타인들 사이에서 나는 생각에 잠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말끔해진 나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벌써 세 번째 ‘미용실에서’ 시리즈다. 앞에서는 미용실에 건져 올린 머리카락에 대한 단상, 반말에 대한 생각을 다루었다. 이번에는 말과 언어에 대해 말하려 한다.


미용실에서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표현의 어려움이다. 식당에 가서 원하는 음식을 주문하듯이, 우리는 미용사에게 우리가 원하는 머리 모습을 주문한다. 윗머리는 이렇게, 옆머리는 저렇게, 구레나룻은 그렇게 해주세요….

학생 때는 이런 고민이 없었다. 그냥 “스포츠로 해주세요”만 외치면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 머리카락의 길이가 길어지자 단 한마디에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는 마법의 주문은 없었다. 구차하게 보일 망정 내가 원하는 모습을 두피 부위별로 나누어 상세히 말해야 했다.

말을 잘하는 편도, 말하길 좋아하는 편도 아닌 내게 이런 미용실 주문 시스템은 번거로움인 동시에 창피함이었다. 결국 나는 두 가지 마법의 주문을 만들어냈다.

첫 번째 마법의 주문은 “그냥 한 달 기른 만큼 잘라주세요”였다. 달에 한 번 미용실이 방문하니 이렇게 주문하면 일정한 머리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두 번째 마법의 주문은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한 유명인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거였다. 약간 낯이 뜨겁다는 단점 외에는 괜찮았다. (군 입대 전날에 배우 조인성 씨의 반삭발 사진을 들고 미용실에 방문한 적도 있더랬다…. 결과는 그냥 빡빡이.)

이렇게까지 하는 건 미용실에서 언어만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만 이런 어려움을 겪는 건 아닌 듯하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주변인이 종종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으아! 이번에 머리 망했어!


과연 말과 언어는 인간의 의도를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말과 언어는 얼마나 완전한 의사소통 수단일까? 손바닥만 한 내 두피 위 털에 대해 표현하기도 이렇게 어렵다. 다른 일은 오죽할까 싶다.


최근에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라는 책을 읽었다. 신체·정신적인 고통을 비롯해 우리 시대 고통의 다양한 모습을 살피고, 고통을 다루는 우리 사회의 방식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 엄기호는 고통을 말끔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마법의 언어는 없다고 말한다. 고통을 겪은 자가 자신의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는 제한이 있으며, 상대에게 언어로 전달 과정에서도 소실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고통의 경험은 온전히 전달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생각을 한다. 같은 법조문을 읽고 다른 해석을 한다. 의미와 의도를 100% 온전하게 전달 가능한 매체가 있겠냐만은, 말과 글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말과 언어의 불완전성이 조금 아쉽기도 하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러한 불완전함과 해석의 다양함이 있기에 내가 글을 쓸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함 때문에 우리에게 더 소통이 필요하고, 이 세상에 색다른 재미와 해석이 가득한지도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말이다.




*부족하지만 <일간 서민재> 연재를 시작합니다. 작가라는 호칭이 부끄럽지 않게 아무튼 뭔가 쓰려 합니다.

*매일 또는 격일 간격으로 쓰려 합니다. <일간 서민재>지만 <격, 일간 서민재>가 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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