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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Dec 08. 2019

머리카락이 내리던 날

미용실에서(1)

일간 연재를 시작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원래도 많았지만, 더 많아졌다. 나의 생각은 공상보다는 현실에 가깝다. 개인적인 삶의 경험과 소회로 가득한 그 생각은 곧 한두 문장으로 표현된다. 그렇게 나의 메모 앱에는 찰나의 깨달음이 가득하다. 이 자기 주동(主動)적이며 무의식적 활동은, 이번 주말 어느 미용실에서도 계속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미용실에 들른다. 항상 '덥수룩해지기 전에 가야지' 하면서도 어느샌가 머리가 자라 있다. 결국은 더 이상 스스로 참지 못할 시점이 되어야 미용실에 들른다. 어느 날 어느 순간, 머리가 지저분함을 깨닫고 서둘러 미용실에 가는 것이다.


꾸준히 자라는 머리카락을 보며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을 떠올린다. 분명 머리털은 매일 자라지만 우리는 이를 지각하기 어렵다. 워낙 더디게 자라고(하루에 약 0.5mm), 인간은 이 변화를 시각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루 만에 자라난 털의 길고 짧음을 구분하는 능력은 고인류 생존에 큰 도움이 안 됐을 것이 분명하다.


많은 이들이 하찮게 여기는 머리카락이지만, 과연 나는 내 머리카락 같은 꾸준함을 가졌는지 자문한다. 그들은 매일 자란다. 멈추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변화를 누적하여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어낸다. 꾸준하기 어려운 세상이라고, 당장 씹고 뜯고 즐길 것들이 널린 세상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그래 봤자 나는 내 털 끝 만큼도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머리카락이 존경스럽다. 머리칼은 알게 모르게 열심히 자라고 있었다. 주인이 알아주지 않아도 꾸준히 자라고 있었다. 진짜 슬픈 일은 그 다음인데, 마침내 주인이 변화를 알아보지만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잘라버리는 것이다. 늦었지만 말해주고 싶다. 그동안 정말 수고했다고. 몰라봐줘서 미안하다고.


잘려 나가는 머리카락이 쓸쓸해 보였다. 떨어지는 꽃잎, 가을의 낙엽 등 인간은 무언가가 떨어질 때 아쉬움과 쓸쓸함을 느낀다. 떨어짐은 본체에서의 이탈이고, 만남이 아닌 이별이고, 시작이 아닌 끝이다. 다시 붙을 수 없는 떨어짐이라면 슬픔은 더욱 크다. 떨어지는 머리털을 보고 가슴이 저려오긴 처음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미용실 바닥으로 눈길을 돌렸다. 어느새 머리카락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이미 떨어진 검정 머리카락은 말이 없었다. 지나치게 감상에 젖었나 하고 고개를 든 순간, 창 밖으로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부족하지만 <일간 서민재> 연재를 시작합니다. 작가라는 호칭이 부끄럽지 않게 아무튼 뭔가 쓰려 합니다.

*매일 또는 격일 간격으로 쓰려 합니다. <일간 서민재>지만 <격, 일간 서민재>가 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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