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차 큰 아들의 엄마 사랑법
엄마의 생신을 맞아 본가에 방문했다. 온갖 이유와 사정들로 무려 1년 만에 들린 나의 본거지. 내가 나고 자란, 우리 가족의 역사가 배어있는 그 집. 엄마 집에 가면 금세 편안해진다. 긴장의 끈이 풀린다.
가장 먼저 반응하는 감각은 후각이다. 대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냄새가 감돈다. 아침으로 차려졌을 음식 냄새. 내 가족의 살결 내음. 한 구석에 있는 화초의 향기까지. 이런 것들이 뒤섞여 말로 표현하기 힘든 우리 집만의 향취가 된다. 나는 어느새 이 냄새와 하나가 된다.
다음으로 내 눈이 벽을 향한다. 자랑스럽게 걸린 내 사진들, 벽지에 표시된 (가로로 그어진) 검정 볼펜 자국들은 모두 내 성장의 기록이다. 어린날의 민재가 어설프게 만들어 자랑스레 내밀었을 수납함도 있다. 간신히 형태만 유지한 채로. 이젠 내 집에 아니지만 이 집은 아직 날 품고 있다.
익숙한 베란다 밖 풍경, 오래된 장판의 촉감, 힘없는 뻐꾸기시계 소리는 또 얼마나 당연한가. 그리고 무엇보다 익숙함이 가득한 이 곳에서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감각은 단연 미각이다.
엄마는 내 혀에 가장 잘 맞는 음식을 차려 주신다. 오랜만에 왔다며 이 음식 저 음식을 해 주신다. 온갖 고기반찬과 해산물이 나온다. 고향의 맛에 취해 이것저것 먹다 보면 어느새 과식이다. 몇 시간 후, 소화가 채 되지도 않은 내 앞에 또 다른 보양식이 나온다. 언제나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나는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그렇게 나는 34년 차 ‘잘 먹는 우리 큰 아들’이다.
언제부턴가 소화기능이 떨어져 먹는 양이 줄었지만, 엄마 앞에서는 아직 잘 먹는다. 그러고는 소화불량을 겪는다. 내 딴에는 잘 먹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효도인 셈이다. 소화불량이 사랑의 증표라고 해야 할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해주신 음식뿐만 아니라, 그들이 주신 사랑도 온전히 소화하지 못하고 있진 않나. 우리가 부모님의 큰 사랑을 다 알고 소화하긴 역부족이지 않나. 사랑을 주는 이는 능숙하지만 사랑을 받는 이는 서툴지 않나.
내일도 엄마는 사랑이 가득 담긴 음식을 담뿍 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난 그 사랑을 남김없이 받아먹을 것이다. 이번에는 엄마의 음식도, 엄마의 사랑도, 아주 잘 소화시켜봐야겠다.
*부족하지만 <일간 서민재> 연재를 시작합니다. 작가라는 호칭이 부끄럽지 않게 아무튼 뭔가 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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