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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Dec 18. 2019

누군가는 웃고 있어도 힘들다

웃고 있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어찌어찌 업무평가서를 완성했다. 매년 하는 이 형식적인 일에 나름의 의미를 발견하고, 동기가 부여됐다. 그렇다고 즐겁지는 않았다. 여하튼, 우리가 왜 업무평가서를 쓰는지에 대한 깨달음과 업무 피드백의 역할과 당위성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진리를 생각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회의실로 옮겼다.


큰 회의실. 전 직원이 모인 자리였다. 부서별로 업무 평가를 했다. 조직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말들이 오갔다. 내 차례가 왔다. 의미 없는 말의 반복은 딱 질색이다. 그래서 앞선 이야기와 중복되는 것은 빼고 발표했다. 담백하게. 그렇게 내 순서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모든 부서의 업무 평가를 마치고, 대표님께서 마이크를 잡으셨다. 일 년 간 조직을 위해 애쓴 모든 구성원을 격려하셨다. 그리고 특별한 두 분께 마이크를 넘겼다. 한 분은 회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수석 팀장님, 다른 한 분은 가장 나이가 어린 신입사원이었다. 두 사람은 지난 일 년의 소회를 모두에게 말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수석 팀장님이 회의실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다소 담담하게 일 년을 돌아보며 말씀을 하셨다. 다음은 신입사원 차례였다. 검정 투피스를 예쁘게 차려입은 신입사원이 앞으로 나왔다. 평소 밝은 미소와 씩씩함을 지닌 그녀였다. 망설이며 마이크를 잡았다.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고, 얼굴에서 쏟아지는 젊음 역시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그녀가 말을 꺼내지 못했다. 갑자기 눈물을 보이며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회의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곧 울먹임을 삼킨 그녀가 입을 열었다.


처음이라 많이 어려웠는데. 그냥 일 년 버틴 것 같아요.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녀의 눈물이, 그녀의 말이 나를 울컥하게 했기 때문이다. 나만 울컥한 게 아니었다. 나도 울컥한 거였다.


처음이 얼마나 두렵고 힘든지, 나는 잊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무심할 수 없었다. 나는 지난 일 년간 그 신입사원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내 일이 바빠서, 내 칼퇴근이 소중해서 '그녀의 버티기'를 못 본 체했다. 같은 부서가 아니라서 그랬단 건 비겁한 변명이다. 그녀가 항상 웃는 모습이어서 그랬단 건 더 비겁한 변명이다.


누군가는 웃고 있어도 힘들다. 겉으로 보이는 웃음이 전부가 아님을 우리는 안다. 어쩌면 직장에서 우리의 웃음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웃음. 힘들고 두려운 마음을 숨기기 위한 웃음.


행복한 사람은 웃는다. 그러나 웃고 있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웃고 있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우리 주변의 웃는 얼굴들을 돌아보자. 그 얼굴 뒤에 숨겨진 어려움과 눈물을 한 번쯤 생각해보자. 여유가 된다면 그 얼굴 뒤에 숨겨진 힘듦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님을.




*꾸준히 쓰기 시작한 후 열 번째 글입니다. <일간 서민재> 10화를 자축합니다.

*스무 번쯤 반복되어야 습관이 된다는데, 더 노력하겠습니다. 진정한 연재노동자가 되겠습니다.

*지치지 않게 적당히 자신을 채찍질하고 시간과 상황을 관리하겠습니다. 이젠 정말 쓰는 일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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