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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Dec 20. 2019

사실은 울며 겨우 씁니다

내 서재엔 바늘이 놓여 있다

바늘로 우물을 파듯이 글을 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은 글쓰기를 '바늘로 우물파기'에 비유했다. 삽으로도 파기 어려운 우물을, 모종삽도 밥숟가락도 아닌 바늘로 판다? 생각해보았다. 바늘로 들어 올린 모래 알갱이는 몇 개쯤 될까. 들어 올린 모래알을 떨구지 않고 얼마나 멀리 옮길 수 있을까. 분명 엄청난 시간과의 싸움, 자신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차라리 맨손으로 땅을 헤집고 싶다.


좋은 글의 감동과 여운은 길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읽는 시간은 짧다. 글쓴이가 그것을 창작하는 데 들인 시간에 비해 턱없이 짧다. 글을 소비하는 이는 글을 생산하는 이의 고됨을 이해하기 힘들다. 글쓴이가 빈 종이 (또는 빈 화면) 를 대할 때의 두려움도 이해되기 어렵다. 여전히 어렵지만, 그들이 바늘로 우물을 팠던 시간을 기억하자.


<일간 서민재>의 열한 번째 글이다. 사실은 울며 겨우 쓰고 있다. 지속적인 글쓰기 연재를 약속하고 겨우 써내고 있다. 겨우 쓰느라 글의 주제도 전개 방식도 일관성이 없다. 다행히 매일 또는 격일로 글을 쓰곤 있지만 내 생활의 족쇄가 되었다. 매일 저녁, 간단히 식사를 하고 서재로 향한다.


계속해서 쓸 것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사소한 소재를 찾아 어떻게든 쓸 것이다. 바늘을 들어 나만의 아주 작은 우물을 팔 것이다. 그렇게, 언제나, 내 서재엔 바늘이 놓여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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