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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Apr 21. 2020

안 보이는 걸 어떻게 보인다 그래요

진짜 안 보인다고요

군에 입대하고, 전방 초소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전방 중에서도 최전방이었다. 가까운 북한군 초소까지 2킬로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당연히 경계 태세는 엄했고 상급 부대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가끔 북한군이 보이기도 했다. 처음엔 신기했다. 내 눈 앞에서 다큐에서만 보던 그들이 움직이고 있다니. 허나 감상할 시간이 없었다. 전방에 북한군이 출현하면 즉시 상급부대에 보고를 해야 했다.

전방 감시가 그곳의 주된 임무였다. 사진=픽사베이

그날도 북한군이 나타났다. 바로 보고했다. 상급부대에 전화를 걸어, 북한군을 발견한 시각과 보이는 인원수를 보고했다. 원래는 더 자세하게 말해야 했다.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인상착의는 어떤지 등. 하지만 너무 멀었다. 맨눈으로 식별이 힘들었고, 쌍안경으로도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상급부대 담당자가 물었다.


  "옷 색깔이 어때?"


내가 대답했다.


  "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아니, 잘 봐봐 보일 거 아냐! 옷 색이 어떠냐고!"


근데 정말 안 보였다. 너무 멀어서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것만 보일 뿐, 색상 구분이 되지 않았다. 북한 군인들이 픽셀 깨진 개미처럼 보였다. 나는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기며 그들을 보았다. 그래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내려둔 수화기를 들어 내가 말했다.


  "정말로 보이지 않습니다. 색 구분이 안 됩니다!"


상급부대 담당자가 수화기 너머 말했다.


  "야! 그래도 얘기해봐!"


  "하… 하늘색 반팔 상의에 갈색 하의를 입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어 아무 색이나 말했다. 대충 맞는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상급부대에서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하려는 것 같았다.


  "좋아. 뭐 하고 있는 거 같애?"


역시 알 수 없었다. 개미가 개미굴을 파는 것 같았다. 하지만 뭔가를 말해야 했다. 런닝 차림의 그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이 이후로도 그의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농사짓는 작물이 뭐냐고 물었던 거 같기도 하고, 내가 고추라고 답했던 거 같다. 그들의 계급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거 같기도 하다. 내가 그의 눈이 되어주어야 했지만 도저히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당혹스러웠던 기억이다.




비무장지대의 동물들은 오히려 평온한 모습이다. 사진=픽사베이

나는 유능한 군인이 아니었다. 상급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대략적인 상황을 말하는 게 우선이었다. '정확'보다는 '신속'이 중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굳어있었다. 원래도 융통성 없는 나는, 그 상황에서 더욱 융통성을 잃었다. 결국 중요한 상황에서 어버버했다.


나를 그토록 쥐어짜던 그 담장자가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다. 보고 전화를 마치고 한참 동안 욕을 했다. 하지만 이젠 조금 이해가 간다. 그도 자신이 속한 조직의 보고체계가 있었을 테고, 상황이 긴박했으리라. 경험 없는 내가 답답했으리라. 그 또한 누군가의 쥐어짜임을 당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저나 그때 그 북한군들은 진짜 뭘 하고 있었을까? 정말 하늘색 런닝을 입고 있었을까? 정말 고추 농사를 짓고 있었을까? 남한 군인들이 반대쪽에서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는 걸 그들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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