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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Apr 25. 2020

바람은 바람을 닮았다

바람이 많은 날이었다.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불어대는 바람과 휘청이는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니 그 바람이 궁금해졌다. 한참을 더 망설이다 바람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 작은 수변공원을 걸었다. 


햇살의 따스함과 바람의 찬 기운이 동시에 느껴졌다. 내가 온화함과 냉철함을 모두 겸비한 사람을 만나 적이 있었던가. 히터를 최대로 높이고 오픈카를 타면 이런 느낌이려나. 내가 그런 걸 타볼 기회가 있으려나. 거센 바람이 만드는 생소한 풍경에, 생각이 많아졌다.


길가에 작은 생명들이 쉴 새 없이 나부꼈다. 바람에 밀렸다 제자리 찾기를 반복하는 풀꽃을 보며 바람이 너무하다 생각했다. 바람 속에 있는 저 풀꽃의 마음이 어떠할까 생각했다. 마구 흔들리는 모습이 괴로운 것 같기도, 나름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풀꽃이 나의 모습 같기도 했다.


생각의 흐름은 결국 다른 '바람'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을 생각했다. 우리가 바라는 것과 인간이 바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다시, 두 바람을 생각했다. 저기서 불어오는 '바람'과 우리가 원하는 '바람'. 그런데 이 둘은 단어의 모습뿐 아니라 어떤 특성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두 바람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두 바람 모두 눈에 보이지 않았다. 공기의 흐름은 당연히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의 욕망도 그러하다. 눈에 보였다면 우리는 여기서 조금 자유로웠을까. 한 곳에 있지 못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공기는 끊임없이 이동하며 바람이라는 흐름을 만든다. 인간의 바람도 한 곳에 있지 않는다. 어제와 욕망이 다르고 오늘의 욕망이 다르다. 본성과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존재가 인간이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속에 있는 것들은 모두 흔들린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우리는 온갖 욕망과 바람 사이에서 흔들리고 괴로워한다. 바람이 없다면 풀꽃도 인간도 흔들리지 않겠지. 바람은 확실히 바람을 닮았네, 라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지나온 길 위로 수많은 바람이 스쳐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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