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재 Jun 09. 2020

공짜로 에어컨을 얻었다

지지난 여름은 엄청나게 더웠다. 뉴스는 연일 무더위를 특종으로 다루었다. 아이스크림, 냉면 등의 매출이 크게 상승했고 에어컨은 없어서 팔지 못할 지경이었다.


에어컨이 얼마나 잘 팔렸던지, 그 친절한 하이마트 직원이 에어컨 가격을 묻는 우리 부부에게 '사려면 사고 말려면 말아라' 식의 태도를 시전키도 했다. 그 불손함에 기분이 상해 에어컨을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무던한 우리 부부도, 그 여름이 더위는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중고나라에서 이동식 에어컨을 샀다. 35만 원짜리 이동식 에어컨은 우리의 작은 방을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그 여름 내내 우리는 작은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집을 장만한답시고 수억의 대출을 받아놓고 몇 백을 아까워한 것도 코미디였고, 내 집을 장만한 첫 해에 이동식 에어컨의 효율을 위해 작은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것도 코미디였다. 사실 그해 여름 자체가 코미디였다. 30년 넘게 살면서 공공도서관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 건 처음이었다. (그곳은 도서관보단 피서지가 가까웠다!)


350만 원의 값어치를 한 고마운 이동식 에어컨.




지난겨울, 제대로 된 에어컨 하나 없이 여름을 버티는 막내딸과 막냇사위를 위해 장모님께서 지갑을 여셨다. 우리에게도 제대로 된 에어컨이 생긴 것이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안 사고 버티다 보니 공짜로 에어컨을 얻었다.


에어컨 없이 사는 고충은 우리 부부의 소소한 이야깃거리였다. 더워서 힘들지 않느냐도 사람도 많았다. 물론 조금은 힘들었다. 하지만 버틴 건 아니었다. 우리 부부는 대출금 상환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기에 작은 이동식 에어컨에도 만족했다. 힘들긴 했지만 즐겼달까.


불과 2년 전이지만 우리는 깡과 패기를 지닌 젊은이였다. 그 젊음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진짜 에어컨을 가졌다. 에어컨의 시원함과 뽀송함을 경험한 이상 이제 다시는 더위를 즐길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그 시절이 조금은 그리울 것 같다. 아주 조금은.


이번 여름도 꽤 덥다고 한다. 하지만 이젠 여름이 두렵지 않다.




https://brunch.co.kr/@banatto/143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도 모르게 브런치를 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