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여름은 엄청나게 더웠다. 뉴스는 연일 무더위를 특종으로 다루었다. 아이스크림, 냉면 등의 매출이 크게 상승했고 에어컨은 없어서 팔지 못할 지경이었다.
에어컨이 얼마나 잘 팔렸던지, 그 친절한 하이마트 직원이 에어컨 가격을 묻는 우리 부부에게 '사려면 사고 말려면 말아라' 식의 태도를 시전키도 했다. 그 불손함에 기분이 상해 에어컨을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무던한 우리 부부도, 그 여름이 더위는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중고나라에서 이동식 에어컨을 샀다. 35만 원짜리 이동식 에어컨은 우리의 작은 방을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그 여름 내내 우리는 작은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집을 장만한답시고 수억의 대출을 받아놓고 몇 백을 아까워한 것도 코미디였고, 내 집을 장만한 첫 해에 이동식 에어컨의 효율을 위해 작은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것도 코미디였다. 사실 그해 여름 자체가 코미디였다. 30년 넘게 살면서 공공도서관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 건 처음이었다. (그곳은 도서관보단 피서지가 가까웠다!)
지난겨울, 제대로 된 에어컨 하나 없이 여름을 버티는 막내딸과 막냇사위를 위해 장모님께서 지갑을 여셨다. 우리에게도 제대로 된 에어컨이 생긴 것이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안 사고 버티다 보니 공짜로 에어컨을 얻었다.
에어컨 없이 사는 고충은 우리 부부의 소소한 이야깃거리였다. 더워서 힘들지 않느냐도 사람도 많았다. 물론 조금은 힘들었다. 하지만 버틴 건 아니었다. 우리 부부는 대출금 상환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기에 작은 이동식 에어컨에도 만족했다. 힘들긴 했지만 즐겼달까.
불과 2년 전이지만 우리는 깡과 패기를 지닌 젊은이였다. 그 젊음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진짜 에어컨을 가졌다. 에어컨의 시원함과 뽀송함을 경험한 이상 이제 다시는 더위를 즐길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그 시절이 조금은 그리울 것 같다. 아주 조금은.
이번 여름도 꽤 덥다고 한다. 하지만 이젠 여름이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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