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재 Jun 15. 2020

사랑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너무 감사해서 그저 받습니다

주말에 엄마가 다녀갔다. 물론 아빠도 함께였다. 엄마는 토종닭 백숙에 겉절이를 해서 아들 부부를 먹였고 아빠는 화장실 물때 제거와 먼지 낀 선풍기 청소를 도맡았다.




서른 중반, 다 컸다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부모님이 오실 때면 게으름 투성이 아들일 뿐이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겨울옷,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 깎을 때가 한참 지난 손톱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아직 부모님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그래도 어쩌랴. 그들은 주는 데 익숙하고 우리는 받는 데 익숙하다. 철부지 어린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는 아직 흐뭇할지 모른다.

‘환갑을 막 넘긴 아들이 아흔의 부모 앞에서 재롱을 부리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쩌면 말이다. 양손 가득 반찬을 들고 와서 양손 가득 쓰레기만 지고 가는 엄마 앞에서 난, 평생 철부지다.




주말에 다녀간 그들의 빈자리가 허전하다.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인 엄마의 김치가, 거실 한 켠 아빠가 읽다 만 신문이 그 자리에 남아 온기를 품고 있다.

부엌에도 화장실에도 씽씽 돌아가는 선풍기에도 깨끗한 우리 신혼집 거실에도, 그들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들은 사랑만 남겨놓고 떠나갔다.




|커버 사진|

Pixabay

MabelAmber




https://brunch.co.kr/@banatto/147

https://brunch.co.kr/@banatto/140


매거진의 이전글 피가 1억이나 한다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