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 웃고 피에 우는 사람들
아파트 분양사무소에 다녀왔다. 몇 년 뒤 완공될 아파트 에어컨 옵션을 변경하기 위해서였다. 에어컨이 잘 되어 있어야 집이 잘 팔린다는 말에, 내 귀가 팔랑인 것이다.
생애 첫 아파트 청약 당첨이었다. 가점제, 1순위, 민영주택… 난 이런 것들이 어렵다. 엄마가 만들래서 청약통장을 만들었고, 친구가 알려줘서 청약을 넣었다. 근데 당첨되었다. 운이 좋았다. 당첨은 언제나 좋다.
알고보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아파트였다. 주변에서 많은 축하를 받았다. 앉아서 돈을 벌거라고 했다. 처음엔 뭔 소린지 몰랐다.
순식간에 1억이 올랐다. 너무 쉽게 올랐다. 입주를 하기도 전에 이렇게 웃돈을 준다는 게 얼떨떨했다. 아파트 가격에 웃돈이 붙으면 이를 '피'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프리미엄(Premium)의 앞 글자를 따서 그렇단다.
피.
꽤 간편하고 경제적인 말이라 생각했다.
아내가 기뻐했다. 다시는 없을 위치와 조건이라 이렇게 피가 붙는 거라고 분석했다. 역시 부동산이라며 나의 당첨운에 고마워했다. 나도 기뻤다. 동시에 알 수 없는 공허감을 느꼈다. 이렇게 쉽게 오르면 정작 집이 필요한 사람은 어쩌나 싶었다.
기쁨, 그리고 어수선한 마음을 갖고 분양사무소에 들어갔다. 나 말고도 여러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번호표를 뽑고 앉아 그곳의 사람들을 관찰했다.
사람들은 모두 싱글벙글했다. 초조한 느낌의 어느 은행 대기석과 달랐다. 대부분 살만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이미 집이 한두 채는 있을 것 같은 여유가 느껴졌다. 마음이 부자여야 진정한 부자라고 하는데, 그 반대가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주고 받는 말이 들려왔다.
갭 차이가 너무 나서…
어디는 따블로 올랐다더라…
그래서 다운계약서를 썼는데…
그들은 서로 처음이었지만, 거리낌 없이 얘기를 나누었다. 같은 아파트의 청약권을 가졌다는 이유로. 얼마나 올랐냐를 묻고 답하며 운명 공동체가 되고 있었다. 하나의 이익 공동체가 되는 중이었다.
피가 오른다는 건 가치가 오른다는 것, 누군가는 꼭 필요로 한다는 거다. 동시에, 피가 오른다는 건 누군가의 피가 마른다는 이야기이다.
아파트 청약 현장엔 정작 보금자리가 필요한 사람들보다 투자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 몰린다. 물론 나도 거기서 자유롭다 말할 수 없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은 너무 달콤하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피가 더 오르면 나는 더 웃을지도 모르겠다. 내 집 하나 없는 사람들의 불안이나 정부의 부동산 정책 따위에 아랑곳 않고 눈에 더욱 핏대를 세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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