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을 잘 못한다. 좋은 대화 주제를 골라내는 능력도, 대화를 이어가는 능력도 영 시원찮다. 원체 말이 없는 데다가 순발력도 부족한 것이다.
붙임성 또한 부족하여, 상대와 두 눈을 맞추고 대화하면 어색하다. 이 어색함이 내 집중력을 흐리는 지경까지 이르면 대화는 미궁 속으로 빠진다.
말없음과 부끄럼. 이런 것들을 보완하고자 여러 노력을 했다. 사람들을 만나기 전 대화의 주제를 미리 정해 보기도 하고 대화 상황을 이미지 트레이닝했다. 라디오를 들으며 디제이의 진행 능력을 배우고자 했다.
사람들과의 대화가 성공적이거나 흡족한 날도 있었다. 나의 드립이 여럿을 웃음 짓게 만든 날도 가끔 있었다. 근데 부작용이 있었다. 두뇌를 풀가동하여 대화에 참여하느라 집에 오면 녹초가 되었다. 대화 주도권을 잡으려는 욕심에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아무래도 말하기는 내 체질이 아닌 것 같았다.
막힘없이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했다. 태생적으로 많이 말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준비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내게, 그들은 작은 위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말이 많은 사람은 결국 실수하게 되어 있어.
꽤 어른스런 한 선배의 조언이었다. 난 이 조언이 마음에 들었다. 나의 '말없음'이 정당화되는 것 같았다. 내가 자동으로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말이 많다'는 관용구에는 두 가지 뜻이 있었다. '말의 총량이 많다'는 의미와 '구설수에 자주 오른다'는 의미.
지나치게 말이 많은 사람이 말 많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닌지, 있는 말 없는 말을 하는 와중에 타인에 대한 배려가 실종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물론 대화를 즐기는 게 잘못은 아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대화를 통한 관계 유지는 필수다. 적당한 험담이 필요한 상황이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부럽다.
다만 이 글은 자기 피알(PR)과 권리 호소가 부족한 한 30대의 자기 반성이며, 묵묵함과 함께 자기 표현을 하자는 소심한 남자의 용기다.
동시에 구설수가 많은 사람이 되지 말자는 다짐이다.
말 잘하는 사람은 부럽지만,
말 많은 사람은 부럽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