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재 Jul 13. 2020

마늘을 까다 화상을 입었다

손끝이 타는 듯하다

마늘을 깠다. 거의 35년 만이었다. 왜 이리 오랜만이냐고? 아, 저기 그러니까 말이다.


생전 처음이었단 소리다.




마트 채소 코너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카트에 계획에 없던 물건을 잔뜩 담아놓고 정작 마늘 값을 아낄 궁리를 하고 있던 것이다.


깐마늘은 3200원, 통마늘은 2650원. 모두 국내산. 가격 차이는 생각보다 근소했다.


내 노동력의 가치는 당연히 시급 550원 이상이기에, 내가 깐마늘을 살 정도의 능력은 된다고 생각했다. 그 옆 다진마늘이 도도하게 나를 비웃고 있었다.


까! 까짓것 까지 뭐!


결국 2650원 어치의 통마늘을 샀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노동의 가치를 느껴보고 싶었던 거 같다.


두 주먹쯤 되는 마늘을 대접에 담았다. 과도를 꺼내 마늘을 까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남편의 모습에 아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세탁기를 돌렸다.


마늘을 까다 눈물이 나면 글 소재로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코 끝이 아주 살짝 매울 뿐이었다. 통마늘 까기는 생각보다 쉬웠다. 그렇게 세탁기가 빨래를 마칠 때까지 마늘 까기 인형은 쉼이 없었다.


중간에 손 끝이 아렸다. 손가락에 상처가 났나? 상처에 매운 기운이 들어갔나? 에이 몰라. 결국 모든 마늘을 깠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 끝 통증이 계속되었다. 손가락에 배어있던 마늘 향은 사라졌지만 화끈거림은 더 심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창을 열어 ‘마늘 화상’을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아무 것도 모르는 새댁이 맨손으로 마늘 까다 걸리는 새댁병이라고.


아마도 마늘의 어떤 성분이 피부에 자극을 주는 것 같다. 다음부터 꼭 장갑을 끼고 마늘을 깔 거다. 아님 깐마늘을 사던지.




당연하게 받고, 사고, 먹어왔던 깐마늘. 엄마가 되었던 아내가 되었던 마트 직원이 되었던 누군가는 이를 위해 애썼을 것이다. 마늘의 속살을 드러내기 위해 애쓴 이가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진실.

작은 화상을 만지며 당연한 것들을 떠올린다.

내 주변 사소한 것들의 값어치를 떠올린다.




https://brunch.co.kr/@banatto/151


매거진의 이전글 일요병을 극복하는 5가지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