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진짜 내가 이걸 입어도 될까?
출근 직전, 거울에 나를 비추어보았다. 반바지를 입은 채로. 어제 입었던 짙은색 긴바지를 바라보았다. 보기만 해도 더웠다. 내 생각의 관성은 이렇게 얘기했다.
아무래도 저걸 입어야 할 거 같은데?
하지만 아침부터 태양이 쨍쨍하다. 고작 아침 7시인데. 오늘은 엄청 더울 게 분명하다. 결국 참지 못한 속마음이 말한다.
반바지가 나쁜 건 아니잖아?
결국 나는 반바지를 택했다. 출근길을 운전하는데 기분이 요상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내 다리를 감쌌다. 출근이 아니라 휴가의 느낌이었다.
분명히 지난 회의 시간에 대표님은 반바지를 입어도 된다고 했다. 우리 조직도 이제 바뀌는구나 싶었다. 이번 여름, 많은 사람들이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면 시원해 보여 좋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게 웬걸. 아무도 반바지를 입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반바지를 허용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입지 않으니 더욱 입으면 안 되는 건가 싶었다.
조금 떨리는 맘으로 사무실에 들어갔다. 동료들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대부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내게 엄지척을 건네는 후배 하나, 시원해 보인다는 선배 하나뿐이었다.
내가 너무 고민이 많았던 걸까.
이미 익숙해진, 익어버린 생각과 행동과 관습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다.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내가 속한 조직의 반바지 보급은 조금 더 시일이 필요할 듯싶다.
관성은 비단 물체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생각의 관성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을 멈추고 다시 반대로 나아가야 한다. 두 배의 힘이 들 것이다.
혹은 생각의 관성을 깨부수는 계기가 있을 수도.
카프카의 도끼가 여기에 해당하는지도 모르겠다.
기존의 문화, 규칙 혹은 억압. 깨고 싶다. 그리고 깨이고 싶다.
|커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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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s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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