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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Sep 14. 2020

타는 가을이었다

가을이었다. 너무나. 하늘은 지나치게 높아서 반갑고, 습하지 않은 공기가 좋고, 아무 노래나 들어도 그냥 좋은 날. 모두 좋은 날. 그게 오늘이었다.


나가자.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왔다. 주룩 흘러나온 이 한마디에 바로 차에 시동을 걸었다. '마음이 동하다'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계획 따윈 없이 그냥 출발. 챙길 건 오로지 마스크 하나였다.


가을 하늘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한 날. 오래 그리던 꿈을 잠시 잊을 만큼 좋은 날. 근교 드라이브로 충분한 날이었다. 긴 장마와 비 소식에 고개를 가로젓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온통 타는 사람들도 가득했다. 자전거 타는 사람, 수상스키 타는 사람, 오토바이 타는 사람, 자가용을 타고 드라이브를 하는 사람…. 작은 경차 조수석에 앉아 편의점에서 탄 저렴한 커피를 손에 들고 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가을을 타고 있었다.


작은 오토바이를 탄 사내가 우리 앞에 섰다. 가을을 타는 모습이 우리와 좀 달랐다. 우리가 가을을 만끽하고 있다면 그는 가을을 배경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의 초록 조끼가 새삼스러웠다.


그의 가을도 응원했다.




도망갈 뻔했어.


어느 가을을 배경으로, 주말 내내 일하다 퇴근을 맞은 친구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내일은 내가 가을을 배경으로 일할 차례라고. 내일은 내가 도망가고 싶을지 모른다고.





*어떤 날도, 어떤 말도-심규선


https://www.youtube.com/watch?v=uYbns3auK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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