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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Sep 23. 2020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에 라디오를 듣는데 이런 얘기가 나왔다.


예전엔 모든 일을 직장 탓으로 돌렸다면
요새는 모든 일은 코로나 탓으로 돌린다.


직장 때문에 뱃살도 주름살도 나잇살도 얻었다는 푸념. 적어도 월화수목금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만하다. 우리는 분명 직장 덕분에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많다. 직장인은 젊음과 시간과 감정을 바쳐 약간의 월급과 경험을 얻는 사람이다.


그래서 때려치우겠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던 사연의 주인공은, 어느새 8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코로나의 영향으로 자신이 '확찐자'가 된 이후 모든 일을 코로나 탓으로 돌리게 되었다는 그런 얘기였다.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라는 그런 얘기.






실제로 코로나 핑계는 강력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전염병 예방을 위해…'라는 말이 붙으면 프리패스가 가능한 요즘이다. 서울 사는 비둘기도 이 영향으로 굶주리고 있다. 청량리 역사엔 전염병 예방을 위해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문구가 있다. 코로나가 조류독감도 아니고, 뭔가 좀 이상했지만 그려려니 했다. 위생 측면에서 아주 틀린 말 같지도 않았다. 청량리역 야외 벤치엔 허연 비둘기 똥이 여전했다.


코로나로 인해…, 오늘의 코로나 확진자는…, 코로나 백신이 곧…


워낙 코로나가 우리 일상에 깊숙하게 들어오다 보니 식상해진 것도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이 신종 감염병에 무뎌진 걸 인정한다. 물론 이는 경계해야 할 생각의 관성이다. 정부 역시 이에 경각심을 갖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다. 총리를 팔아서라도 코로나를 막겠다는 모습이다.


(출처=정세균 총리 페이스북)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면, 이번 추석은 이동을 자제하는 모습이다. 코로나를 막기 위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정점을 찍는 건 아래의 문구였다.


조상님은 차피 비대면,
코로나 걸리면 조상님 대면


무거운 마음으로 추석 관련 기사를 보던 나는 크게 웃었다. 그 표현이 너무도 절묘해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다. 누군가에게는 핑계가 되는 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떤 명분을 주는 말이었다. 하지만 틀린 말을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스스로 '코로나 사태'를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우울하게만 여긴 것은 아닌지 돌아봤다. 지금이 힘든 상황인 것은 맞다. 다 같이 조심하고 협력하되, 얼굴을 맞대면 안 되는 그런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 같이 우울감에 빠져 있을 필요는 없다. 안 그래도 넘치는 사회적 우울감에 더 보태기를 할 필요는 없다.


그런 면에서 정부의 노력과, 반박하기 힘든 말들의 유행이 반갑다. 우리는 각자의 공간과 위치에서, 한 번씩 웃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으면 된다. 마스크 벗고 크게 한번 웃고 다시 마스크를 쓰면 된다.


코로나는 아직 우리 곁에 있다. 이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사실은 그러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우린 앞으로도 각자의 공간과 삶을 지켜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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