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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Oct 27. 2020

야근하지 않으려 했었다

오늘도 칼퇴를 꿈꿨다.


출근하자마자 열심히 일했다. 컴퓨터를 켜자마자 기한이 어제까지였던 보고서를 마무리지었다. 오늘의 업무 계획을 확인하고 관련 자료를 뒤적였다. 하나씩 일을 처리하고 업무용 메신저를 확인하고 걸려오는 전화에 응대했다.


점심을 빠르게 먹고는 곧바로 자리에 앉았다. 매일 먹는 비타민 세 알을 집어삼키고 펜부터 들었다. 내일 있을 회의 자료를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뿌리치지 못했고, 그러면서 오후 회의에는 다녀왔다. 역시 회의에 다녀오면 회의감만 들 뿐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예스와 땡큐를 외치다 보니 벌써 퇴근 무렵이었다. 밖은 꽤 어두워져 있었다. 남 일 하느라 내 일이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 채,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특히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그랬다. 보기 싫은 사람과 마주하는 일, 내 리듬과 시간을 내어주는 일,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나의 일부를 바치는 일이었다. 연차가 쌓이고 경력이 늘어날수록 진짜 나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퇴근길. 차에 올라 강연 하나를 재생했다. 강연 속 노학자는 말했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일은 '내 맘대로 살지 못한 것'이라고. 나는 지금 내 마음대로 살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는지, 지금 하는 일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태어나도 나는 이 일을 할 것인지 생각하며 주차장을 나섰다.


집에는 또 다른 직장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고, 나는 혼이 쏙 빠졌다고 했다. 그것이 누구 때문인지 무엇 때문이지 우리는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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