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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Jan 11. 2020

아빠는 미니멀리스트였다

그는 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을까?

나의 아빠는 택시 일을 한다. 무려 30년의 무사고를 자랑하는 ‘베스트 드라이버’다. 매일 신문과 뉴스를 챙겨보는, 적은 말수와 묵묵함을 지닌 가장이다. (적어보니 나와 겹치는 부분이 많음을 새삼 깨닫는다!)


내가 어렸을 때, 몸은 컸지만 정신은 어려서 TV와 광고에 빠져 지내던 시기가 있었다. 흔히 말하는 대중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화면에 나오는 최신 것이,
유행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줄 알았다.


그 유행을 따라가기 위해 사고, 먹고, 소비했다. 최신 유행만이 가치 있는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으로 나의 주변을 평가했다.


그런 나에겐, 아빠의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옷을 사 입지 않는 것이었다. 아빠는 옷이 별로 없었고, 그마저도 유행이 한참 지난 옷이었다. 깔끔하지만 (어린 아들의 눈에는) 멋이 없는 옷차림이었다. 아빠는 남들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어린 나의 눈에 비친 아빠의 옷차림은 그렇게 무심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그런가, 생각했다. 내가 크면 유행에 민감이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었다. 20대에는 유행에 민감하지 못한 게 부끄러웠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세상을 이해하는 길이라 믿었다. 나를 트렌드에 밀어 넣었다.


그러나 유행은 끝이 없었다. 맹목적으로 유행을 따르다 행복하지 않은 나를 발견했다. 기존의 믿음이 흔들렸다. 급기야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미디어 속 트렌드를 추종하는 것이
내가 가진 색깔, 장점 등 타고난 것들을
거스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화면 속의 것들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미니멀리즘을 접하게 되었다. 미니멀리즘은 생소하지만 매력적인 철학이었다.


생활 속에서 조금씩 실천해보았다. 줄이고 멀리했는데 전보다 행복했다. 세상과 멀어지는 듯 했지만, 내 삶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많이 보다는 적게 가지며,
남보다 나에게 집중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미니멀리스트하고 하면 흔히 스티브 잡스, 간디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어느 날 바라본 나의 아버지는 미니멀리스트 그 자체였다. 단벌신사에, 루틴은 정해져 있다.


일상의, 일정한 루틴은 삶 자체를 단순화시킨 미니멀의 정점이 아닐까. 고수들은 일상, 하루 자체를 간소하게 줄이고 형식화한다.


아빠의 일상은 대게 이렇다.

08:00 일어나 아침을 먹고 오전 손님을 태운다

11:30 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13:30 식후 낮잠을 자고 다시 일을 나간다

17:00 저녁까지 손님을 태우고

17:30 퇴근 후 저녁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렇게 하루를 단순화 한 나의 아빠는 미니멀리스트였다. 멀리서 찾을 게 없었다. 책을 보며 감탄한 외국의 미니멀리스트 빰 쳤다. 그가 바로 미니멀리스트였다. 나는 옆에서 그걸 보고 자랐으면서도 대중문화에 빠져 나를 잃어만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겨우 나를 찾는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그 길 위에 나의 아빠가 있었다. 그런데 아빠는 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을까? 고단한 운전을 지속하기 위한 체력 관리를 위해? 남이 아닌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다 보니?


내 질문에 대한 아빠의 답변은 이랬다.


개인의 건강 관리와
지구 환경 보호에 일조하기 위해
검소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멋있다. 아빠는 필요 없는 것(복잡한 일상, 무분별한 소비)을 줄이고 중요한 것(건강, 환경)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빠 뒤에서 후광이 나오는 듯 했다. 그 순간이 내게는 어떤 가르침보다 위대하게 빛났다.


현자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아빠와 얼굴이 많이 닮았다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사진=서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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