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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May 24. 2021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때

내 삶이 우선이었다.


남이 아픈 것보다 내가 아프지 않은 게 먼저였다. 내가 먼저 살아야 남도 도울 수 있는 거라고 혼자 속삭였다. 내 일과 내 감정을 먼저 돌보았다. 아직까지 난 변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지 않다.


남을 돌보지 않을지언정 남을 탓하지 않았다. 모든 일의 시작도 나, 끝도 나였다. 내 삶의 모든 부분을 스스로 바꿀 수 있다 생각했고, 바꾸지 못해도 괜찮다 생각했다. 바꿀 수 있으면 감사할 수 있었고, 바꾸지 못하면 자족할 수 있었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일들만 일어났다. 잘한 일은 칭찬을 받았고, 못한 일은 책임을 졌다. 행동할 수 있었다. 포기할 수도 있었다. 이도 저도 안되면 합리화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 삶에 대해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그러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날과 마주했다.


아픈 이유도 모르고 아픈 당신에게 위로의 말 밖에 줄 수 없을 때. 당신을 지켜만 봐야 할 때. 위로의 말조차 미안할 때. 그 마저도 건네지 못할 때. 당신이 아프다는 사실 자체가 싫어 너도 나도 싫어질 때. 무력감마저 느낄 수 없을 때.


어쩔 도리가 없는 일 앞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안타까움이라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억울함에 매몰되어 있는 한숨을 보았을 때. 아무 대답이 없는 하늘을 바라볼 때.


그렇게 누군가는 슬퍼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따뜻한 햇살에 누군가 말라가고 있을 때.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때. 신에게 두 손을 모을 수밖에 없을 때.


고작 나라는 사람 하나, 그 하나의 삶의 범위를 벗어나자 드러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수많은 것들. 그리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을 때가 있다. 오로지 내 삶만 우선시하지 않게 된 건 다행이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전혀 반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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