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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Sep 02. 2021

90이면 많이 살았지

건강해야 돼. 몸 아프면 사나 마나야.


어르신께서 나를 잡고 말씀하신다. 건강하지 않으면 사는 게 오히려 고행이라는 뜻일까?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어르신께 이런 얘기를 직접 들으니, 괜히 새삼스럽다. 인생 교훈을 전수받는 그런 느낌이랄까.


이런저런 병을 앓으셨다고 한다. 건강해 보이셨는데 나만의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쪽 다리가 불편하신 듯하다. 뇌 무슨 질환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집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내게 생소한 병명이어서 그럴 테다. 차라리 내 나이대에 앓는 병을 앓으셨다면 조금 더 공감을 해드렸을 텐데. 차라리 다른 병이라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갑자기 아들 이야기를 꺼내시는데, 퇴직을 했단다. 하긴 요새 퇴사가 유행이니까. 나처럼 직장 생활이 맞지 않았나 보다. 그럼 프리랜서로 일을 하려나. 창업을 했을 수도 있겠군. 그런데 알고 보니 정년퇴직이라고 하신다. 공공 기관에서 몇 년 전에 정년을 나셨다니, 이제는 아드님(?)도 60을 훌쩍 넘기셨으리라. 어르신의 나이가 쉽게 생각되어지지 않았다.


우리 아들도 노인이네, 허허.


갑자기 허허 웃으신다. 우리 아들이라고 칭하는 아들이, 이제 60 넘은 노인이라고 생각하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으셨을까. 나는 이 어르신의 손자뻘, 어쩌면 그도 안 될지 모른다. 세월의 아득함이 느껴진다. '세대 차이'를 넘어 '세월 차이'를 느낀다.


지나가던 동네길에서 마주친 우리는 그렇게 대화를 이어갔다. 나의 신상 정보를 여럿 물어보셨고 나는 성실하게 대답해드렸다. 나는 감히 무엇을 여쭙지 못했다. 감히 춘추를 여쭙지 못했고, 감히 존함을 여쭙지 못했다. 취미가 무엇인지 여쭐 수도 없었다.


90이면 많이 살았지.


밝은 얼굴로 어르신은 말씀하신다. 여유일까? 지혜일까? 분명 꾸며낸 감정이 아니었다. 죽음 앞에서 초연한 모습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한 장면이었다. 다만 내가 아는 초연보다는 더 경쾌했다.





어찌어찌 대화가 끝나고 홀로 걸었다. 내가 90이 되면 나도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직 더 살아야 한다고 발버둥을 치고 있을까. 앞으로 60년 뒤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젊음을 마냥 부러워하고 앉아만 있는 내가 아니길 바라본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벤치에 앉아 계신 어르신들을 뵐 때가 있다. 그곳을 뛰어서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와 너무도 대비되는, 미동도 없이 지팡이에 의지한 어르신들을 뵈며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내 예상보다 더 유쾌하고 찬란한 생각을 그분들께서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측은했던 나의 눈빛은 나의 어리석음이자 건방진 억측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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