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소중한 자녀 교육에 이 정도는 투자되어야 합니다
열심히 자전거를 페달을 밟아 겨우 학생의 집에 도착했다!
대학생 시절, 과외를 했다. 중학생 수학 과외였는데 주 2회 학생을 만났다. 페이는 한 달에 15만 원. 당시 시세로도 보통 이하 수준이었다. 교통비도 아까워 한 시간씩 자전거를 밟아 학생의 집에 갔다.
원래 주 2회였는데 가끔 주 3회를 해주겠다고, 나는 학생의 어머니에게 선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랬나 싶다. 생전 처음으로 하는 과외여서 소중했던 것 같다. 정말 잘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전임자보다 더 열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는지 모른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 자신까지 버려가며,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면 안 된다는 것을. 그 정도가 지나치면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것을. 결국 내가 힘들고, 불행해지면 그 상황은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을. 내면에서 우러나지 않은 '보여주기'의 한계는 명확하다. 나만 손해다.
스무 살의 나는 무지했고 순수했다. 어떠한 앞뒤 계산 없이, 누구도 요구하지 않은 열정페이를 스스로에게 요구했다. 그렇게 주 2회 수업은, 어느 순간 주 3회로 굳어졌다.
자의와 선의에서 시작한 나의 무리수(?)는 1년 가까이 지속됐다. 나중에서야 페이에 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크다는 걸 깨달았다. 오로지 돈 하나만 바라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내 노동의 대가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이동 시간을 포함해 1회 지도에 4시간이 소요되었다. 일주일이면 12시간. 한 달이면 48시간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과외의 횟수를 줄이던지, 금액을 늘리던지 하자고. 문제는 어떻게 나의 생각을 전달하느냐였다. 과외하는 학생의 어머니와 통화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고민 끝에, (당시만 해도 정말 핫하던) 네이버 지식인에서 해답을 찾았다. 다행히 나와 비슷한 고민의 질문과 답변이 있었다. 그 답변을 참고 삼아 통화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그리고 학생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동일 금액에 과외 횟수가 늘어나게 된, 내가 자초했던 상황을 상기시켜드렸다. 원래대로 주 2회에 15만 원으로 할지, 주 3회에 20만 원으로 할지 의견을 물었다. 솔직히 나는, 이미 주 3회 과외를 해오고 있었기에 임금인상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심혈을 기울인, 통화의 마무리 멘트는 이거였다.
"어머님의 소중한 자식 교육에 이 정도 투자는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오글거리는 멘트인데, 당시엔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팩트 있는 마무리라고 생각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에서 웃음인지, 탄식인지, 실소인지 모를 무엇인가가 터져 나왔다. 어머니는 앞으로 주 2회를 하자고 했다.
연봉 인상을 기대했던 나는 실망했다. 하지만 그러자니 그렇게 했다. 전화를 끊고 후회했다. 내가 괜한 소리를 했나 싶었다. 돈만 밝히는 사람처럼 보였을까 부끄러웠다. 다음날 과외를 갔는데 어찌나 민망하던지… 고개를 들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다시 말하지만 그땐 부끄러웠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당당할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합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당당하고 당연한 것이다. 나는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더욱 최선을 다할 수 있다. (다만 나의 가치를 올리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임자보다 '나아보이기' 위한 봉사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낱개의 수업과 학생과의 관계에 집중해서 내 실력을 보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일 것이다.
문득. 궁금하다. 그 학생은 잘 지내는지. 어머니는 잘 계시는지. 또 궁금하다. 어설픈 20살의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실지.
|커버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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