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의 추억
입사 전과 후의 회사는 달랐다.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회식'이었다. 정말 회식이 많았다. 말이 좋아 회식(會食,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음식을 먹음)이지, 원치 않는 술자리였다.
지금이야 나름 거절도 하고 요령도 피우지만, 그땐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신입이기도 했고 회식에 빠지는 이를 이상하게 취급하던 문화가 있었다. 회식을 업무의 연장선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날이 좋으면 좋다고 마셨다. 날이 좋지 않으면 좋지 않다고 마셨다. 날이 적당하면 적당하고 마셨다. 모든 날이 (술 마시기) 좋았다. 더우면 맥주, 비가 오면 막걸리, 이도 저도 아니면 소주였다.
나만의 고충이 아니었음을 안다. 그리고 즐거울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 신입사원인 나를 챙겨주기 위해 그들은 시간을 내주고 돈을 내주었다.
술자리에 가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통찰까지는 아니더라도, 회사 생활의 조언과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팁을 얻는다. 문제는 술이 깨면 기억이 안 난다는 것. 오히려 너무 열심이어서 분에 넘치게 술을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말을 한 사람도, 들은 사람도 '기억'이 없다. 다만 어디선가 넘어진 상처와 함께 했다는 '추억'만이 남는다. 이러한 공허함에 지쳐, 어느 날은 주머니에 종이와 펜을 챙겨가 들은 내용을 적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숙취와 함께 몰려오는 허전함은 여전했다.
회식을 통해 인맥을 구축하기도 한다. 일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도 했다. 술로 맺은 관계는 술로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때의 그들과 그 자리에 감사함을 간직하고 있다. 나를 이끌어준 힘이 되어주기도 했고 따스함이기도 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모든 것들 속에 회식도 있다.
그럼에도 마냥 감사하진 않다. 사람과 어울리기를 태생적으로 좋아하는 내가 아니다. 항상 불편했다. 불판의 삼겹살을 맨손으로 집어먹었다던,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을 확인하는 일도 불편했다.
어쨌든 나는,
회식으로 관계와 중독을 얻었고,
시간과 건강을 잃었다.
회식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큰 게 사실이다. 하지만 회식이라는 관계와 경험이 스스로를,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회식에 무조건 참여하게 될까? 처음부터 못 먹는 사람이라고 잡아떼게 될까?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속한 조직은 이제 예전처럼 회식이 많지 않다. 우리 사회가, 조직이, 구성원이 바뀌었다. 술을 먹지 않는 사람에게 관대한 세상이 반갑다. 그리고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감사하지만, 마냥 감사하진 않은 기억. 이것이 내가 신입사원 시절에 겪은 회식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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