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재 Mar 06. 2020

그들이 경험했다는 시간

시간의 위대함을 생각하며

날이면 날나마 오는 게 아닙니다!


라는 말로 시작하는 약장수들의 이야기가 있다. 금강산에서 10년, 지리산에서 10년, 계룡산에서 10년 간 도를 닦고 이제 막 하산했다고 한다. 우리는 코웃음을 친다. 그들은 산신령 포스를 지니지 못했다. 거기다 30년 동안 수련했다기엔 너무 젊다. 아예 산에서 태어났다면 모를까.


약장수들의 멘트를 다시 보자. 산이라는 '장소' 보다는 수십 년이란 '시간'에 주목해보자. 우리가 웃는 건 그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이 경험했다는 그 '시간'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어떤 얘기를 들었다. 인생 경험이 많은 분의 이야기였고, 그분을 스쳐간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기엔 2명의 대단한 동료가 등장한다.


첫 번째 동료는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같이 술 먹고 어울리던 동료인데 어느 날 보니 생물학 박사 학위가 있더란다. 생물학은 그 동료의 대학 전공도 아니었다. 어찌 된 사연인지 물으니, 업무상 필요에 의해 과학 관련 논문을 뒤적이다 흥미가 붙었고, 혼자 공부를 지속했고, 재미가 있어 결국 대학원에 진학 후 학위까지 취득했단 것이다. 그는 첫 번째 대단한 동료였다.


두 번째 동료는 약간의 장애가 있는 동료였다고 한다.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지만 배움이 아주 느린 사람이었다. 이 동료가 직장 내 기타 소모임에 참여했는데, 옆에서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였다고. 이후 주변에서 괜한 걱정을 하며 만류하기도 했지만 그는 나직이 속삭였다.


괜찮아. 난 5년은 해야 돼.


그리고 그는 지속했다.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기타를 잡았다. 손끝이 아프다며 다른이가 지쳐갈 때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쌓은 그의 특기가 수두룩했다고 한다. 그는 두 번째 대단한 동료였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들은 이야기를 메모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들은 이야기였는데, 적어놓고 보니 좀 갸웃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들이었다. 자신의 전문 분야를 만들어라. 한 우물을 파라. 꾸준히 노력해라. 끈기를 가져라. 새로운 도전을 해라. 하다 보면 뭔가 된다. 뭐 이런 이야기들. 다만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닌 '진짜 이야기'라는 게 내 심장을 조금 뛰게 만들었을 뿐이다.


나의 현재 상황을 돌아봤다. 나의 전문 분야는 무엇인가? 나는 꾸준하게 노력하고 있는가? 나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는가? 나는 하다 보면 될 것은 믿고 멀리 내다보고 있는가?




다시 약장수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산 저 산에서 도를 닦았다는 사람들. 그들이 진짜 도사이거나 박사인지 알 길은 없다. 다만 30년, 아니 20년만 쳐도 한 분야를 파고들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이 경험한 시간을 증명할 무엇을 우리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제야 우리는 웃음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위대함을 생각한다. 1년도 채 지속하지 못하는 나의 가벼움을 책망한다. 내가 금강산, 지리산, 계룡산에서 도합 30년간 닦을 '무엇'을 고민한다. 내게 그 30년을 쓰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묻는다.




|커버 사진|

Pixabay

gkswndus112




https://brunch.co.kr/@banatto/70

https://brunch.co.kr/@banatto/74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나는 내 책을 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