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드렛일에 대해 생각한다. 직원 체육대회에서 주전이 되지 못해 물주전자를 나르던 나를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하는 일은 그 사람의 가치 정도를 의미하지 않을까. 특히나 무가치해 보이는 일을 하고 있을 때, 나의 가치에 대한 의문이 든다.
동영상 편집 좀 할 줄 아나?
어느 오후. 어슬렁어슬렁 걸어온 상사가 내게 물었다. 갈등했다. 한다고 말할까 못 한다고 말할까. 도대체 또 무슨 일을 시키려는 속셈일까.
아, 유튜브 한다고 했지? 그럼 잘하겠네.
망했다. 벌써 결론이 났다. 나는 동영상 편집을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다음부턴 상사 앞에서 사적인 이야기는 최대한 줄여야겠다.) 결국 상사의 허드렛일을 맡게 되었다.
그는 말했다. 어젯밤 3차로 7080 라이브 카페에 가서 찍은 동영상이 맘에 들지 않는다 했다. 동영상을 세로로 찍었는데 자꾸 가로보기가 된다고 했다. 이걸 편집해서 본인이 보기 편하게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부탁인지 업무 전달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는 상사이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바쁘게 일하는 사람에게 갑자기 불쑥 내미는 이것이 과연 부탁이 맞나 싶었다. 안 그래도 바쁜데 지나치게 사적인 부탁을 받는 게 몸서리치게 부담스러웠다. (난 마케팅 부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고 있지도 않다.)
그건 제 일이 아닌 거 같습니다.
목끝까지 올라온 말을, 결국 내뱉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상사는 조금 당황하는 듯했다. 아 자네 말이 맞지, 하고 본인 자리로 돌아갔다. 사무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속이 후련했다. 하지만 곧바로 후회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지. 아 이제 내 직장생활은 망했다. 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눈을 떴다. 여전히 사무실이다. 아까의 그 상사는 내 앞에 있다. 카톡으로 방금 보냈어, 하고 그는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카톡으로 색소폰 연주자의 동영상을 받았다. 7080 라이브 카페의 그것이다. 초점은 흔들렸고, 영상 속 술 취한 사람들의 탄성이 오고 갔다.
내 컴퓨터에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부터 설치했다. 카톡으로 받은 동영상을 컴퓨터로 옮겼다. 그리고 몸서리치게 하기 싫은 영상 편집 작업을 시작했다. 사무실의 정적은 나를 위로해 주지 못했다.
|커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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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eva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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