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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Mar 10. 2020

사는 게 생각 같지 않다면

우리가 이토록 괴로운 이유

현실과 이상의 괴리.


스무 살 적에 처음 마주하고, 아직까지 나의 뇌리 깊숙이 박혀있는 말이다. 그때는 왠지 멋있고 '있어' 보여서 여기저기 많이도 썼던 것 같다. 그 뜻을 잘 알지도 못한 채.


이후로도 문득문득, 이 말이 떠오르곤 했다. 행복에 겨워 살아갈 땐 완벽하게 잊었다가, 힘이 들 때면 생각났다. 사는 게 생각 같지 않을 때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때나 그랬다.


너무나 갖고 싶고, 닿고 싶고, 되고 싶은 무엇에 가까워지지 않았다. 그 거리감이 나를 괴롭혔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혹시 인생의 모든 괴로움은 현실과 이상의 차이에서 오는 게 아닐까.
이 갭이 크면 클수록 인간은 더 불행해지는 건 아닐까.


사실 내가 스스로 깨달은 건지, 어느 책에서 읽은 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엄청난 삶의 통찰을 얻었다는 생각에 잠시 행복했다. 괴로움의 원천을 알았으니 이제 다시는 괴로울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난 정말 단순하고 순진했다.)


하지만 이 생각조차 현실에 부딪혔다. 내겐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양극단의 갭을 줄이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다시 한번 나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경험했다.




인생 모든 괴로움의 원리를 다시 생각한다. 당신과 내가 이토록 괴롭고 불행한 이유는,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불만족의 근원에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있다. 이제 내가 밟고 있는 땅을, 내가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돌아보자.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이상이 너무 높은 건 아닌가?


당신의 현실 속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한참이나 벌어진 저 간극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몇 가지 조언을 적어본다. 자신만의 꿈을 갖고 사는 평범한 직장인 A의 이야기도 함께 살펴보자.



1. 현실을 올바르게 직시하자.


이상을 좇는 당신, 현실을 바르게 보고 있는가? 혹시 당신의 전제(당신이 알고 있는 현실)에 오류가 있지는 않은가? 꿈과 이상도 좋지만 먼저 우리가 밟고 있는 곳에 대해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직장인 A는 퇴근 후 기타를 배운다. 벌써 5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남들보다 빠르게 기타를 배우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곧 '가수 데뷔'라는 꿈을 꾸게 되었고 매일 기타 연습을 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았다. A는 슬픔과 슬럼프에 빠져 기타를 배우기 이전보다 불행해졌다.


직장인 A의 불행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먼저 그의 전제가 틀렸을 수 있다. 태어나 처음 기타를 배운 A는 흥미와 열정으로 배움을 이어나갔다. 실제로 재능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가수만큼의 실력을 가졌을지엔 의문이 든다. A는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현실을 올바르게 보아야 한다. 지금 나의 위치를 아는 것이 우선이다. 현재의 나를 알지 못하면 이상과의 차이 정도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구이며, 당신의 현재 위치는 어디쯤인가? 당신이란 '존재'와 사회적 '역할'에 대한 정의가 잘못되면, 현실이 괴로울 것이다. 매일 가수 데뷔만 생각하는 A는 본업을 등한시할 확률이 높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길 원하는가? 그럼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르게 이해하고, 스스로를 올바르게 정의하자.



2. 이상이 현재를 갉아먹지 못하게 하자.


현실을 알았다면 이제 이상을 살펴볼 차례다. 혹시 당신은 지나친 이상 때문에 괴로운 건 아닌가? 이상이 지나치면 욕심이 된다. 이는 마음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직장인 A는 슬럼프 이후 기타를 쉬었다. 가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직장을 증오했던 날을 돌아봤다. 취미였던 기타 연주가 본업을 위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취미마저 또 다른 '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다시 예전처럼 즐겁게 기타를 치고 싶었다.


이제 A는 다시 기타를 친다. 원하는 이상을 낮춰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직장에서 이전처럼 다시 활력을 찾았고, 종종 거리에서 버스킹 공연을 한다.


위 A의 사례는 어쩌면 우리 이야기다. 현실은 무시한 채 이상만 추구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우리 앞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너무나 괴롭다면, 지나친 이상을 가진 건 아닌지 생각해보자. 욕심과 이상 어디쯤 당신의 바람이 있는지 말이다.


꿈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꿈은 클수록 좋다. 나는 언제나 꿈과 도전을 환영한다. 하지만 꿈과 이상이 현재의 행복을 갉아먹지 못하게 관리하고 (시간, 감정, 노력 등을)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노력을 통해 현실을 재창조하자.


이 방법은 앞선 두 가지 조언과 접근이 다르다. 고생할 준비가 된 당신에게 추천하는 방법이다. 가장 이상적이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나의 이상을 이루는 것이다!

높은 이상은 그대로 두고 나의 능력, 조건을 극도로 높여 현실을 바꿔버리는 것이다.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이다. 따라서 현실을 초월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 대신에 처음의 이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직장인 A가 본업을 유지한 상태로 가수의 꿈도 버리지 않는 경우이다. A가 저 높은 자신의 이상을 위해 매일 퇴근 후 3시간, 주말마다 하루 10시간 동안 가수 데뷔를 준비하는 경우이다.


힘들고 괴롭고 포기하고 싶을 것이다. 다시 이상을 낮추고 싶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고통을 즐겨야만 한다. 그렇기에 성취 후에 얻는 큰 기쁨은 다른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큰 보물이 될 것이다.




사실 삶의 문제는 훨씬 복잡하다. 위의 단순화한 사례와 조언을 모든 이에게 일반화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요컨대,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현실을 높일지, 이상을 낮출지는 당신의 선택이다.


조금 모라라도 괜찮다. 완전함에 닿을 수 없더라도 거기까지 향하는 길은 의미 있다. 우리의 삶도 행복도 그렇다. 인간의 괴로움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기인하는 게 맞다면, 정말 그렇다면? 이 갭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 분명 더 나은 삶을 만드는 데 작은 불씨가 될 것이다. 비록 그 틈을 완전히 메우지는 못할지라도 말이다.




|커버 사진|

Pixabay

Anemone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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