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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Mar 11. 2020

안 되겠다 싶어 고무장갑을 꼈다

습진이 생겼다. 내가 설거지를 전담하고 일어난 일이다. '설거지 그까이거 대충 하면 되는 거 아냐?'라고 했었는데 보기 좋게 습진을 얻었다.


설거지는 자신 있었다. 그래서 대충 손으로 하고 말았다. 물이 손에 닿아봐야 손이 얼마나 상하겠어. 근데 얼마나 상하던지. 결정타는 재택근무였다. 삼시 세끼 먹고 설거지하고, 간식 먹고 설거지하고. 바이러스 있을까 괜히 씻은 손 또 씻고…. 코로나와 재택근무는 내 손에 쉴틈을 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고무장갑을 꼈다. 내 손은 소중하니까. 있을 때 잘 지켜야 하니까. 창문에 아내의 모습이 비쳤다. 결혼하면 손에 물 안 묻히게 해줄게, 라고 내가 했었나. 있을 때 잘 지켜야겠다.


설거지를 한참 하는데 아내가 다가왔다. 고무장갑을 낀 나를 보고 하는 말.


"역시 해 봐야 안다니까."


놀리는 건지 격려해주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부정할 수 없어 씩 웃고 말았다. 내가 설거지를 하지 않을 때는 이렇게 수고로운 일인지 몰랐으니까. 그래 봐야 아직, 화장실 물때와 방바닥에 뒹구는 머리카락을 외면하는 나니까.


끝없는 집안일의 굴레 속에 힘들었을 아내를 이제라도 지켜야겠다. 고무장갑을 끼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 고무장갑의 돌기가 조금이라도 닳아 없어질 때쯤 아내의 습진도 사라졌으면 좋겠다.




|커버 사진|

Pixabay

laterjay




https://brunch.co.kr/@banatto/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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