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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Dec 19. 2020

우리, 또 만날 수 있을까?

코로나가 만들어준 애매한 관계들

요즘엔 주로 가까운 지인들만 만나게 된다. 코로나로 활동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친하지 않은 사람은 굳이 나서서 만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생활의 좋은 점은 계속 보는 사람들과이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팬대믹 시대를 같이 이겨나가고 있다는 동지애까지 생긴다. 그리고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는 굳이 볼 일이 없으니 마음이 늘 편하다. 의무감 때문에 만나던 관계들도 코로나라는 좋은 핑계가 있으니 이젠 안 봐도 괜찮다. 하지만 안 좋은 점도 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이의 지인들과 점점 거리감이 생기는 것이다. 시간은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온라인 상태인 시간도 훨씬 긴데.. 왠지 메신저로도 연락을 잘하지 않게 된다. 할 얘기가 제한적이기도 하고, 불쑥 만나자는 약속을 잡기도 좀 그렇다. 이 시기에 만나자고 했다가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개인적인 영역에 급 밀고 들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망설임도 든다. 또, 그쪽도 연락이 없는 것은 매한가지니 내가 먼저 나설 필요는 없겠거니 생각도 든다.


어제 길을 지나가다가 '애매한' 관계의 동료를 마주쳤다. 우리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지만, 공통으로 아는 다른 친구가 있다. 그리고 그 친구와 우리 둘 다 꽤나 가깝다. 그래서 이 친구와 나는 뭔가 '애매한' 관계다. 아주 친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멀게 느껴지지도 않는 애매한 사이. 코로나가 시작된 후, 한 번도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그 와중에 이 친구의 소식은 다른 친구를 통해 간간히 듣고는 있었다. 잘 지내고 있다고만 대충 전해 들었다. 한동안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몇 달 만에 보려니 참 반가웠다. 이 친구도 그랬는지, 함빡 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친구는 먼저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며 안부를 물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요즘엔 이미 모든 소식이 업데이트가 되어 있는 친한 사람들과만 만나다 보니 생긴 부작용이었나 보다. 가벼운 물음엔 가볍게 답해야 하는데, 단순하게 '나 잘 지냈어!'라고 하기엔 그동안 못 본 세월의 갭이 너무 크다. 이렇게 짧은 대답은 아마 너무 성의 없게 들리지 않을까? 그렇다고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지난 반년 동안 나는 어쩌고 저쩌고.. 미주알고주알 다 말하려니 그것도 투 머치다. 내가 생각해도 부담스럽다. 물론 친구도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것도 아닐 것이다. 그냥 적당히 대답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적당한 말을 어떻게 하는 건지 잊어버렸나보다. 랙에 걸린 것처럼 버벅거리다가 대충 둘러댔다. 그 장단에 맞춰 동료도 적당한 리액션을 해주었던 것 같다.그 후엔 뭐 평범하다. 나도 그 친구의 안부를 묻고. 그 다음엔 늘 그렇듯이 코로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고...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헤어지며 우리는 '그럼 안녕. 다음에 보자'라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별 뜻 없이, 습관적으로 한 말이다. 그런데 뒤돌아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도대체 우리가 보자는 ‘다음'은 언제일까? 이렇게 우연히 마주치지 않는 이상 우린 아마 조만간 또 볼 일이 없을 텐데... 코로나 이전에는 그래도 오피스에서 오며 가며 마주치기라도 했는데, 재택근무 시작 후 거의 반년을 못 본 우리다. 언제쯤되야 볼 일이 생기려나..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인데 다음에 보자니. 이렇게 영혼 없는 인사를 해도 되는 건가?


이 동료를 처음 만난 건 작년이었다. 함께 아는 지인 을 통해 몇 번 만났고, 관심 분야가 비슷해 같은 모임에 참석해 마주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개인적으로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는 한번도 없었다. 그 친구와 가까워질 만한 계기도 딱히 없어 늘 데면데면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고, 재택근무를 시작하고나니 오프라인에서 마주칠 일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인지 아쉬움이 생겼다. 만약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하는 생각에. 아마 난 이 친구와 더 친해졌을 수도 있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졌으니 서로 잘 통하는 구석을 발견했을 수도 있고, 각자의 고민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볼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까워져 함께 다른 모임에도 가보고 취미 활동을 같이 하며 새로운 경험들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코로나와 함께 이 관계는 멈춰 버렸다는 것을. 이 친구와 나는 엄청난 세기의 우정을 쌓았을 수도 있는데... 아주 절친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코로나 덕분에 이렇게 어색한 인사나 주고받는 사이로 남은 것이다.


그 친구와 가까워지지 않는다고 큰일 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마주치기 전까지 별생각 없이 살고 있었던걸 보면 그 친구가 내 인생에 없으면 안될 존재도 아니다. 하지만 뭔가 아쉽다. 그리고 코로나가 이렇게 내가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구석구석 그 영향을 뻗쳤다는 게 기분이 좋지는 않다. 아마 이 친구뿐이 아닐 것이다. 내게 찾아 왔을 새로운 관계, 새로운 사람들을 전부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조바심마저 든다.


그래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코로나로인해 일상의 많은 부분에 제동이 걸렸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리고 이건 언제든 내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더이상 망설이지 말고, 그 친구에게 안부 메시지를 보내는 것.

'오늘 마주쳐서 정말 반가웠어. 우리 또 볼 수 있길.'

그렇다, 어쩌면 이 메시지가 우리의 관계에 새로운 국면을 불러올 지도 모른다. 어제의 어색했던 만남을 지나, 조금은 뜬금 없는 이 메시지 하나가 특별한 관계의 시작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그러니 용기를 내야 한다. 메시지를 보내봐야 알 수 있다. 우리 관계가 어떻게 될지.


그리고 혹시나 우리가 더 가까워지지 않더라도 괜찮다. 우리에겐 코로나라는 아주 좋은 핑계가 있으니까.


@PC l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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