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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Dec 21. 2020

폴라로이드 사진이 필요한 날

문득 휴대폰 사진첩을 보았다. 매일같이 사진을 많이도 찍는다. 주로 음식 사진이다. 그 외에도 셀카, 오늘 입은 옷, 지나가다가 본 하늘, 택배 받은 인증샷... 하루에도 몇 장씩 찍는다. 어디 놀러 나간 날엔 수십 장을 찍었다. 사진만 봐도 내 일상이 보일 정도다. 그 외에도 중요한 서류, 수도관 검침 숫자, 장 볼 리스트... 기록해두어야 하는 것들도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사진 찍는 게 흔하디 흔한 수단이 되었다는 게 실감 난다.


대학 시절, 스마트폰을 사기 전에 디지털카메라가 있었다. 용돈을 모아 장만한 조그만 카메라였는데, 꼭 가지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다음에 컴퓨터로 파일을 옮기고, 친구와 찍은 사진은 압축해서 보내주고. 잘 나온 사진은 싸이월드에도 올려두고... 그중에 또 몇 개를 꼽아 인화해 앨범에 넣어두었다. 스마트폰을 사고 언젠가부터는 안 하게 되었다. 폰으로만 찍기도 하고, 굳이 사진 정리를 안 하게 되기도 했다. 그만큼 사진의 특별함을 잃어버려서 인 듯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특별한 사진은 존재한다. 내게 특별한 사진은 폴라로이드 사진이다. 출장 갈 때 특히 폴라로이드 사진을 꼭 가지고 다닌다.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람들, 인연이 닿은 사람들과 사진을 남기는 용도다. 특히 아직 스마트폰이 많이 보급되지 않았거나 사진 인화가 용이하지 않은 곳에 가면 소중한 수단이 된다. 나는 폰으로도 카메라로도 사진을 잔뜩 찍어 간직하지만, 그 순간들을 기꺼이 허락해준 사람들과 그 추억을 나누기가 어렵다. 그래서 폴라로이드 사진이 더 유용해진다.


폴라로이드 사진은 찍는 순간부터가 즐겁다. 모두가 포즈를 취한다. 여러 번 찍기에는 필름 수가 제한적이니, 다들 최선을 다해 포즈를 취한다. 하나, 둘, 셋 하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위잉 하는 기계 소리와 함께 사진이 나오기 시작한다. 사진이 인화되어 나오면 다들 벌써 신이 난다. 아이들은 달려와 아직 다 나오지도 않은 사진에 손을 뻗기도 한다. 그리고 아직 형체가 다 드러나지 않은 필름을 보며 사진이 잘 나왔는지 기다린다. 그 기다리는 시간도 즐겁다. 빨리 말랐으면 하는 마음에 사진을 흔들기도 하고, 후후 불어보기도 한다. 사진에 조금씩 형체가 드러나면, 누구는 먼저 보겠다고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이 조그만 사진 하나로 모두가 웃을 수 있고 행복해지는 순간이라는 게 감동스러울 정도다. 그런 행복을 더 많이 나누고 싶어 최대한 많이 찍고 잘 나온 사진들을 전해주고 왔다. 사진 찍기가 흔한 일상이 된 우리에게는 이런 설렘과 즐거움을 느낄 일이 드물다.


멕시코에서 찍은 사진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뒤적이다 보니 그 날의 순간들이 떠올라 기분이 좋다. 그날, 그 장소, 그 사람들... 내가 살면서 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들도 있다. 연락처가 없어 안부도 물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함께 있었다. 그들도 나와 찍은 사진을 간직하고 있을까? 가끔 사진을 보며 그날을 추억할까? 


앞으로도 특별한 순간들을 열심히 모으고 싶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언제 또 떠날 수 있을지 기약 없는 날들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지금, 내 옆의 사람들과 폴라로이드 사진도 몇 장 남겨둘 것이다. 별 일 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지만 특별한 순간으로도 기억하고 싶다.


@Lisa Fot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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