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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Dec 25. 2020

시를 쓰고 싶은 날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졸업 프로젝트를 하며 현지 조사를 하기 위해 멕시코에 갔었다. 멕시코에서 6주간 있었으니 짧다면 짧지만, 내게는 꽤나 긴 시간이었다. 보통 여행을 가면 길어야 2주 정도 체류할 텐데, 6주는 새로운 환경을 겪고 적응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하는 활동들이 물론 바빴지만, 저녁시간과 주말을 이용해 숙소 근처를 탐험할 수 있었고 근교에 여행도 다녀왔다. 


멕시코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나라였다. 어딜 가나 다양한 색채의 장식들이 눈에 띄었고, 사람들은 열정이 넘쳤다. 음식을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해 매일 새로운 메뉴를 먹어보며 즐거웠다. 낭만도 넘치는 곳이었다. 주말 아침이면 도시 곳곳에 사람들이 모여 음악을 틀고 춤을 췄다. 

@Ricardo Esquivel


하지만 한 가지 큰 장벽이 있었으니 언어였다. 나는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기에 기본적인 단어, 인사말 정도를 공부해갔다. 하지만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정도였다. 내가 무언갈 말하더라도, 상대방의 말을 못 알아들으니 그나마 아는 말들도 무용지용이었다. 최소한 수도에서는 영어가 좀 통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주문하기도 힘겨웠고, 손짓 발짓을 하며 겨우 소통했다. 택시를 타도 소통이 수월하지 않아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다. 내가 일하던 동료들 정도와 그나마 대화가 가능했다. 하지만 동료들에게 너무 의존하고 싶진 않았고 그들도 각자의 생활이 있으니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피스 바깥을 나가는 순간, 나는 너무나 외로웠다. 


아시아 사람들이 아직 많지 않아 신기해 보였는지 내 존재는 어딜 가나 궁금증을 자아냈다. 차별이나 놀리는 의도는 아니고, 호기심에 내게 이런저런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럴 때도 나는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른다 혹은 한국에서 왔다 (일본인들이 많아 일본에서 왔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대충 대답을 했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대화 이상은 소통이 불가능했다. 그렇게 몇 줄을 보내고 나니 난 왠지 모를 소외감, 고립감에 젖어 있었다. 혼자 관광지도 가보고 힙하다는 동네도 가보았지만, 어딜 가나 답답한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라틴음악이 골목마다 울려 퍼지는 일요일 아침, 나는 외로운 마음으로 동네를 서성 거리기도 했다. 


그런 답답한 마음을 못 이겨 생전 처음 시도한 일이 있었으니... 바로 시를 쓰는 것이었다. 나는 어릴 때 학교에서 시를 쓰라고 숙제를 내주지 않은 이상 시를 써본 적이 없었는데. 이런 답답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던 나는 어느새 노트에 시를 적고 있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답답함, 외로움, 고립감을 시로 써 내려갔다. 시를 써본 일이라곤 없는 나인데 별 고민 없이 글이 술술 써졌다. 아마 시의 형식에도 맞지 않을 거고, 창의적인 표현이나 기교가 있는 시도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표현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읽어보고 이불 킥을 하며 내가 왜 이런 걸 쓴 거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땐 그랬다. 그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다. 


@Josh Fields


그 순간 내가 그만큼 강렬한 감정을 느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자신의 느낌, 생각, 감정들을 여과 없이 표현해내는 아티스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고 감히 말해본다. 하지만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시를 쓸 만큼 감정을 풍부하게 느낀 일은 없었다. 앞으로 살면서 그런 순간들이 또 찾아올까. 답답하고 외로운 심정은 제쳐두고, 이왕이면 긍정적인 감정으로 느끼고 싶다... 예를 들어 행복감, 사랑, 기쁨, 성취감 등등. 말로 표현하기에는 한참 부족해 다른 매체를 빌려야 하는 순간. 그렇게 인상 깊은, 시를 쓰고 싶은 날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엔 기대해봐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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