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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Dec 29. 2020

부끄럽고 남사스러운 생일 알림

그래도 축하는 받고 싶다!

곧 생일을 앞두고 있다. 매해 어김없이 찾아오는 날이다.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살아있음을 기념하는 건 좋은데... 한 살 더 먹는 건 싫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일 그 자체도 부담스럽다. 매년 누구나 기념하는 생일을 맞이하는 것이 나에겐 왠지 남사스러운 일이다. 


내 생일이라 축하를 받는 건 당연한 건데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 일일까.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나름 성대한 축하를 받았다. 생일이 명절과 가깝다 보니 외가에서 한번, 친가에서 한 번씩 모두 모인 자리에서 미리 생일 파티를 했다.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기념하는 게 다였지만 멀리 사는 친척 어른들, 사촌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다 같이 축하를 해주시니 나름 스케일이 컸다. 그런데 다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그 순간, 나는 늘 긴장되어 있던 것 같다. 1분 남짓한 노래를 부르며 모두가 주인공인 나를 바라보면 난 한없이 수줍어졌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는 순간, 씩씩하게 촛불을 잘 불어 꺼야 할 것만 같아 마음속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하는지 까먹고 아차차 하는 순간 생일 축하 인사를 받고... 정신이 없었다. 내 생일 파티이니 주인공이 제일 신나야 하는데 난 그럴 여유는 없고 오히려 숨고 싶어졌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 축하를 받지 못하면 서운했다. 학창 시절엔 엄마가 친한 친구들을 불러 생일 파티를 해주기도 하셨고, 대학교 땐 친구나 남자 친구와 함께 근사한 곳에 가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내 생일이라고 말하는 것도 내겐 좀 민망한 일이었는데, 친구들에게는 굳이 공개하지 않아도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에서 서로 알게 되니 그것 참 편리했다. 아주 가까운 친구가 아니어도 생일 알림이 뜨면 메시지 하나 정도 남기기에는 부담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새 그렇게 받는 축하도 조금 민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 플랫폼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지 않게 되어 나도 다른 사람들의 생일을 잘 챙기지 못한 탓도 있다. 누가 내 생일에 그렇게나 신경을 쓰겠냐만은 이 남사스러움은 나이를 먹어도 없어지질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일이 뭐 별 건가 하는 권태감도 생겼다. 생일에 미역국은 끓여 먹어도 더 특별하게 챙길 만큼 유난스럽지도 못하다. 떠들썩한 파티는 내 취향이 아니기에 친구들과 소규모로 만나 생일 기념 맛있는 식사 정도로 기념했다. 굳이 생일이라고 알리지 않은 적도 많다. 친구가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봐 말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김칫국일 수도 있지만). 


네덜란드에서 생일을 챙기는 방식은 이렇다. 생일인 당사자가 케이크나 간식거리를 준비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생일 임을 알리고 축하를 받는다. 커피 머신 옆에 놓아두고 오가는 동료들에게 권해도 되고, 미팅 때 가져가 함께 먹거나 하며 간단한 축하를 받는다. 이것도 나에겐 민망한 일이긴 했지만 내 생일이니만큼 내가 좋아하는 맛으로 준비했다. 그렇게 동료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그냥 내 생일은 내가 챙긴다는 자세와 가볍지만 기분 좋게 넘어가는 문화는 맘에 든다. 모두가 생일에 그렇게 하니 그리 유난 떠는 느낌도 아니다. (물론 이건 직장이나 학교에서의 경우고,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따로 성대한 파티를 여는 경우가 많다) 


그러던 중, 카카오톡에서도 생일 알림을 해주는 걸 보았다. 좋은 점은 나도 깜빡 잊고 넘어갈 뻔한 친구들의 생일을 챙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대단한 축하는 못하더라도 카톡 메시지라도 하나 남길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나는 생일을 입력해두지 않았었다. 카카오톡의 연락처 목록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친한 지인들은 아니기 때문에 뭔가 거리감이 들었다. 목록에 이젠 교류하지 않고 지내는 전 직장 동료, 학교 선후배, 동기 등등도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고. 지금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소소하게 축하하고 넘어가는 게 내 맘이 더 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냉소적으로 대한다 해도, 생일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날이다. 나도 가족, 친구들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듯이 내 옆에 사람들도 그러지 않을까라는 설레발 섞인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서 올해는 마음을 바뀌어 일찌감치 생일을 입력해두었다. 그날이 내 생일이라는 사실도,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도, 생일이라고 축하를 받는 것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싶어서다. 여기서처럼 케이크 한 조각 씩 권할 순 없지만.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안 그래도 연결고리가 점점 없어지는 한국의 지인들에게도 기술의 편리함을 빌어 은근히 알려보려는 의도다. 내 카카오톡 친구 목록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림이 뜬다고 생각하니 벌써 부끄럽다. 바쁜 일상 속에 카톡 알림은 그렇게 큰 관심사가 아닐거란 걸 알지만, 보고 별 생각 안할거라는 것도 알지만. 나에겐 민망스럽기 그지 없다. 하지만 좋은 날이다. 그래서 이런 수줍음을 무릅써본다. 이렇게 자연스레 알려, 가까운 지인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고 싶은, 조금은 이기적이고 호들갑스러운 마음이다. 


올해는 거의 이런 느낌일 것 같지만... 내 생일은 내가 챙겨야지! @cottonb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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