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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Dec 31. 2020

대차게 차인대도 괜찮아

용기내어 들이대자 2021년!

남자 사람 친구의 얘기다.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의 영향으로 네덜란드에 올 정도였다고 하니 그 마음이 꽤 컸나 보다. 그 친구가 파리로 유학을 가게 된 후, 자기도 프랑스 또는 유럽 어딘가의 가까운 나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단다. 우여곡절 끝에 네덜란드로 와서 석사 과정을 밟게 되었고 그 덕분에 나도 이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친구는 몇 번이나 파리에 찾아가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작년 크리스마스 쯔음에서야 고백을 결심했다 하니 그간 혼자 마음을 썩힌 모양이다. 그렇게 친구는 나흘 일정으로 기차표를 끊어 그 여자분이 사는 셰어 하우스에 묶으며 파리 구경을 하기로 했다. 그녀도 마음이 있었던 건지, 순전히 우정의 표시였는지 모르지만 그녀도 시간을 거진 비워두고 파리의 명소를 함께 다니기로 계획도 세웠단다. 마침 그녀도 에펠탑을 겉으로만 보았지, 위에 올라가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둘은 함께 에펠탑도 올라가기로 하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도 예약해두고 좋은 시간들을 하나 둘 계획해두었다. 그렇게 만난 그들은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파리 시내를 누비며 걸었다. 그리고 분위기 좋은 식당으로 가 맛있는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그러고 나서 이 친구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고백하기로.

더 이상 감정을 숨길 수 없어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난 친구 이상을 원해, 우리 이제 연인으로 만나보자."


낭만의 도시. 파리의 밤, 친구는 그렇게 서투르지만 진솔한 고백을 뱉었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온 그녀의 답은...

실망스럽게도... 거절이었다.

"난 너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 없어,

우리 앞으로도 좋은 친구로 지내자."

너무 상투적인 말이어서 듣는 나도 마음이 아팠다. 그는 그녀의 마음을 어떻게든 돌려보려 했지만, 그녀는 굳건했다고 한다. 그렇게 거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상처뿐인 밤이 되었다.


친구는 담담하게 얘기했다. 거절도 거절이지만 남은 사흘이 지옥 같았다고. 그녀는 계속 친구로 지내야 한다며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 대놓고 상처를 드러낼 수 없었다. 갑자기 다른 숙소를 잡기에도, 계획해둔 일정을 취소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저 강행하는 수밖에. 거절의 충격은 잠시 묻어두고 올라간 에펠탑 정상에서 내 친구는 처참하디 처참한 심정이었단다. 아름다운 경치 앞에 다른 연인들에 둘러 싸여 그녀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말그대로 고문이었다. 심지어 곳곳에 프로포즈를 하는 연인들이 눈에 띄니 힘겹게 억지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그렇게 어색하고 고통스러운 그지없는 사흘을 보내고 겨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가 어찌나 오는지 캐리어를 끌며 비를 쫄딱 맞은 채 걸어가며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나에게 사랑이 올까 속으로 되뇌었다고 한다.


일 년이 지난 후에야 이 얘기를 전해 들었다. 상처가 아물지 않아 미처 얘기하지 못했던 걸까. 내가 다 안타까웠다. 한편으로는 오지랖 섞인 한마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 날까지 기다렸다가 얘기하지 그랬어.

그럼 잘 안되더라도 바로 올 수라도 있지.

어색하게 그게 뭐야."


내 말을 들은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잘 된다면,

그녀가 날 받아준다면,

당장 다음날부터 우린 사랑하며 추억을 쌓았을 거야. 

우리가 함께 보낸 사흘이 더 행복했을 거고.

그래서 에펠탑에 올라가기 전에 고백하고 싶었어. 

이왕 가는 거, 연인으로 간다면 평생 기억에 남을 순간이 되었을 테니까."





얼마나 그녀를 좋아했는진 모르지만, 그 용기만큼은 정말 가상하다. 그에겐 실패의 두려움보다도 성공했을 때 찾아올 행복의 무게가 훨씬 컸나 보다. 나는 그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망설이다가 놓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왜 잘 안 되는 경우만 생각하는가. 잘 됐을 때, 그 행복을 온전히 누릴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가. 내 친구는 잘 되진 않았지만 후회는 없단다. 몇 년을 짝사랑한 그녀와의 사랑에는 실패했지만 좌절만 남진 않았다.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리란 기대, 그 사람에게도 최선을 다할 거라는 다짐. 대차게 차였다는데, 뭔가 멋있는 구석이 있다.


에펠탑 정상에서 속삭이는 사랑, 그런 영화같은 순간을 위해서는 어느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나도 2021년을 이렇게 시작하고 싶다. 잘 안될 거라는 생각만 무턱대고 하지는 않으련다. 미리 짐작하고 걱정하는 대신, 잘 될 경우만 생각하며 도전할 것이다. 내게 올 성공과 행복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용기 내어 들이댈 것이다. 결국 잘 안 풀려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되더라도 후회는 말자. 그리고 또 들이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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