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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Jan 26. 2021

햇살 좋은 겨울날

이 겨울, 팬데믹의 끝을 기다리며 - 

며칠 동안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어찌나 세었는지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가 너무 커 잠을 설쳤다. 잊을만하면 오는 비까지 합세해 우중충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코로나에 대한 걱정보다도 날씨 때문에 집 밖에 나서기가 망설여졌었다. 이제 이 곳의 길고 긴 겨울의 2/3가 지나갔다. 아직 한두 달은 더 있어야 따뜻한 날씨가 찾아올 테니, 벌써 지치면 안 된다. 하지만 아무리 영향을 받지 않으려 해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이 날씨만은 도대체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러던 중 실낱같은 희망이 생기는 하루가 찾아왔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보였다.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커튼을 걷어냈다. 며칠째 어둡던, 낮에도 전등을 켜야 했던 방 안에 햇살이 가득 쏟아져내렸다. 이렇게 밝고 따사로운 하루가 얼마만이었나. 


창 밖을 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락다운으로 갈 곳도 별로 없을텐데 다들 어디를 바삐 가는 건지. 나도 집에만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대충 걸쳐 입고 집을 나섰다. 센터에 가서 한적한 거리를 골라 걷다가,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갔다. 날씨 덕분인지 손님이 꽤나 있었다. 안그래도 문 닫은 가게들이 여럿 눈에 띄어 씁쓸했던 참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분주한 카페가 반가워 기다림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들고 걸어 다니며 홀짝 홀짝 마시니, 그냥 기분이 좋다. 바깥 공기는 아직도 한참 차가운데도 그렇게 춥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오랜만에 받는 햇살과 따뜻한 커피 덕분에 그렇게 오래오래 걸어 다녔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을 걸어 다니다가 집에 들어오니 손끝 발끝이 빨갛게 얼어 있었다. 그래도 기분은 상쾌했다. 날씨만 조금 좋아져도 이렇게 기쁘고 행복한데... 내 행복은 정말이지 가까이 있었구나, 실감이 났다. 해가 났다는 좋은 핑계로 내친김에 밀린 빨래도 했다. 세탁기에 빨래를 가득 채워 넣으니 뿌듯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그렇게 긴데도, 집안일을 미루는 건 왠지 그대로다. 내 일상은 천천히 흘러가 실감은 안나지만, 그 사이에도 시간은 꾸준히 흘러가고 있다. 새해 첫날을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일월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걸 보면. 매년 그랬듯 올해도 길고 긴 겨울이 끝나간다. 어찌 됐든, 이번 겨울의 클라이맥스는 지나갔다. 날씨는 이제 점점 좋아질 것이다. 일월 초에 뜬금없는 눈까지 왔었으니, 이제 따뜻해질 일만 남았다. 뭐, 하루 좋았던 날씨를 가지고 지나친 낙관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천천히 느릿느릿, 봄은 오고 있다.


그제부터 이 곳에서는 야간 통행금지를 시작했다. 원체 늦은 시간에 잘 다니지 않아 내게 큰 영향은 없다. 하지만 내 일상을 닫아 거는 요소가 하나 더 생긴다는 게 전혀 반갑지 않다. 코로나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반증 같아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긴 겨울이 끝나가듯, 시간은 계속 가고 있다. 그리고 상황도 하루하루 조금씩 변하고 있다. 지금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었다는 것은 아마 앞으론 좋아질 일만 남았다는 것 아닐까. 올해 초부터 일찌감치 백신 보급도 시작했고, 사람들도 안전 수칙을 비교적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 그러니 더 나빠질 수는 없을 거라는, 다시 상황이 좋아질 거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해본다. 길었던 겨울과 함께, 팬데믹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저 내 마음이라도 편하자고 막무가내로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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