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by 하노

냉장고에서 모친이 담가준 파김치를 꺼내 금방 끓인 짜파게티와 함께 내온다.

우리는 조금 전 식사모임에 다녀온 참이다. 음식은 맛있었지만 양이 좀 아쉬운 식당이었다.

아내는 매번 그런 상황에 평소보다 더 적게 먹는다. 다른 사람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누군가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무조건 본인이 나서서 한다. 그런 아내가 답답할 때가 많았다.

눈치 보지 말고 좀 더 먹지 그랬냐고 타박을 하면 내가 끓여준 짜파게티가 더 맛있어서 오히려 좋다며 해맑게 웃는다. 아내는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은데 욕심은 참 없다.


나의 형은 2살 터울의 딸 둘 아빠다. 둘 사이에 하루가 있어 연달아 한 명씩 딸들이 태어났다.

가족 모임이 있어 애들이 한자리에 모일 때면 꼭 싸움이 일어난다. 그 속에서 항상 양보를 하는 쪽은 하루다. 겨우 4살 아이가 욕심부리지 않고 자기의 것을 언니와 동생에게 내어준다. 그럴 때마다 내 속만 탄다.

너무나 자기 엄마를 빼닮아서.


궂은일을 해야 할 때면 역시나 아내가 나서서 한다. 그래서 나는 가족이 모일 때면 성질머리 더러운 아들이 된다. 그것이 내 나름의 시월드에서 아내를 지키는 방법이다.

나와 형은 언제인지 기억도 못하는 우리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유일하게 매년 챙기는 것도 아내다.

며느리의 그런 모습을 두 분은 무척이나 좋아한다. 아들만 둘인 내 모친은 니들은 반드시 딸을 낳아야 한다고 노래를 했었다. 그 노래가 현실이 되긴 했지만, 아내가 우리 집 며느리로 들어오면서 그 노래는 멈췄다.


하노의 음악연재[音樂連載]를 시작한 지 6개월. 그동안 이런저런 비용도 많이 들었다. 필요한 장비들을 사야 했고 한 달의 한 장씩 6장의 앨범을 제작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6개월 동안의 성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한 결과라는 것을 알았지만 내심 기대를 했던 걸까? 고작 6개월 만에 무력감을 맛봤다.

유통사에 최종 자료전달 기한이 임박하거나 해야 할 작업이 몰려 밤새야 할 일이 많아질 때는 가족에게 조금 소홀해진다. 그럴 때 드는 미안함의 감정은 사실 어쩌면 이 모든 작업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이 그저 내 안의 욕심을 채우는 단순한 에고이즘을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까지 번지며 나를 자책하는 상황에 이른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채는 아내는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준다. 다 그만두고 집에서 음악만 하라며 허세를 부린다. 나의 음악을 아무도 안 들어주면 어떻냐고 자신이 듣고 있다며 더욱더 몰아 친다.

때로는 고작 6개월 해놓고 약한 소리 한다고 호되게 혼을 낸다. 6년을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수 있다며 아무런 기대도,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묵묵하게 해 나가라며 기분 좋은 훈계를 한다.

아내는 변함 없고 한결 같이 나에게 말한다.


"오빠가 행복해야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할 수 있어."


나의 행복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 아내의 그런 마음에 다시 또 힘을 내어 나아간다.

어쩌면 아내를 만나 결혼해서 함께 살게 된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성공을 이룬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다투면서 서로를 미워할 때도 많지만 지금까지

12년 동안 함께 하면서 한 번의 헤어짐 없이 서로만 생각하며 아껴주고, 잘 사랑하고 있음에 감사하다.


아내와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 우리는 바다에 갔었다.

얼마 전 마감 기한에 쫓기다 겨우 제시간에 유통사로 자료를 넘기고 즉흥여행으로 바다를 갔었다.

12년 전과 같은 바다였다. 그동안 우리의 많은 것들이 변했고, 둘 사이 아이도 태어나 함께 왔는데.

바다는 그대로였다.


식어버린 태양은 바다뒤로 넘어가고

뜨거이 달궈져 내일 다시 떠오를 거야

저 노을 지듯이 우리 같이 늙자

저 노을 지듯이 우리 서로를 기억하자.


이렇게 아내를 위한 노래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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