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소나타

by 반디
오겡끼 데스까?
와타시와 겡끼데쓰!

겨울을 떠올리면 왠지 모를 슬픔이 늘 따라온다.

나카야마 미호는 첫사랑의 '러브레터'와 함께 영원히 떠났고, 제니와 올리버의 '러브스토리'도 그렇게 눈물을 쏟게 만들더니 이제는 기억에서조차 희미하다. 바람머리 배용준과 최지우는 궁궐 같은 집에서 행복한 엔딩으로 '겨울연가'를 마무리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배우 박용하의 죽음은 새드 엔딩으로 결말을 바꿔 버리기도 했다.

스토리만큼이나 강렬했던 음악은 또 어떤가. 전주만 흘러도 코끝이 찡해지고 눈앞이 뿌옇게 되는 마법을 일으킨다. 겨울에 듣는 음악은 감성의 예민함을 극으로 끌어 올리기에 충분하다.

비단 영화나 드라마의 겨울만 슬픔이 묻어나는 건 아니다.

현실에서도 겨울이 슬픈 이유는 가난한 이들에게 유독 잔인한 계절이기 때문이다. 돈으로 따뜻함을 살 수 있는 계절.

요즘은 다른 주요 기사들이 많아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때는 겨울만 되면 노숙자들 사이에서 신문지 한 장, 박스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심심찮게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의아했다. 그 종이 한 장이 무엇이 건데 생명까지? 하고 말이다.

종이 한 장이 그들에게 주는 따뜻함의 무게를 알지 못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없어도 그만, 있어도 쓰레기일 뿐이지만 노상에서 칼바람과 눈발의 매서움을 맨 몸으로 막아내야만 했던 그들에게는 극세사 이불보다 귀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들과는 다른 경험으로 오래전,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덮고 잠깐 눈을 붙인 적이 딱 한번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품어 왔던 종이 한 장의 의문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종이 한 장의 무게만큼 따뜻함이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종이 한 장, 박스 한 장도 집이 되고, 난로가, 핫팩이 되고, 침대가 되고, 이불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을.

그래서 였을까? 아이들이 어릴 적, 종종 동화책을 읽어줄 때면 유독 성냥팔이 소녀를 읽을 때마다 자꾸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고였던 게. 소녀에게는 찰나일망정 성냥이 타들어 가는 동안은 무엇보다 따뜻하고 환한 세상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연탄을 떼던 집들이 많던 시절에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일가족이 하루아침에 봉변을 당하는 일들도 부지기수였다.

실외에서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도 겨울이 곤욕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겨울의 차가운 이면은 늘 이렇듯 슬픔을 동반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면서 싫어하는 동화가 '플란다즈의 개'이다.

지금 보아도 웬만한 슬픈 영화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볼 때마다 너무 울어 머리가 아픈 동화다. 보기 전에는 필히 두루마리 화장지 한 통은 넉넉히 준비해 두어야 한다. 특히, 네로가 눈바람이 몰아치던 날, 절도범으로 몰려 성당에서 파트라슈와 죽어가던 모습은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왜 가난은 이토록 가혹한 것인지 어린 나이에도 겨울 감성이 더해져 더욱 시리고 아팠던 것 같다.

이맘때가 되면 늘 떠올린다. 겨울 소나타.

오늘도 이웃들 중에는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무서워 냉방에서 추위와 사투하고 있는 이들, 불 꺼진 겨울밤과 새벽에도 일당 만원을 벌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노상에서 추위를 잊기 위해 종이 한 장으로 다툼을 벌이는 이들도 여전히 있을 것이고, 당연스레 먹고 마시는 것조차도 당연스럽지 않은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오늘 밤, 가만히 두 손을 모아 본다.

눈의 결정처럼 아름답지만 너무 차갑고 시린 겨울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내 주변의 이웃들을 겨울처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게 해 달라고.

어딘가에 있을 성냥팔이 소녀와 네로를 잊지 않게 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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