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학왕라니 Jul 30. 2022

엄마에게서 죽음을 보았다.

2022.7.25.월요일

엄마가 아픈지 10년이 지났다.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급하게 입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동생은 외할머니가 데리고 가신다고. 지금 챙겨야 할 것들이 있으니 오늘은 집에 일찍 오라고 했다. 그 일을 시작으로 엄마는 건강이 괜찮아졌다 심해졌다를 반복했다. 늦둥이 막내아들이 고등학교 갈 때까진 살아야 할 텐데, 큰딸 시집은 보내 놓고 죽어야 할 텐데, 둘째 딸 애 낳는 건 보고 싶은데, 하면서 오늘까지 엄마는 살아있다.


코로나 백신 2차 접종 후에 엄마는 컨디션 회복이 힘들었다. 몸이 힘들다고 했다. 그러다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는데 5월에 병원에 갔다가 폐에 물이 찼다는 결과를 들었다. 그날 병원에 간 이유는 간암 치료를 위한 시술을 하기 위함이었다. 시술 일정을 미루고 폐에 물 찬 것부터 빼야 했고, 혈소판 수치를 올리기 위해 수혈을 받아야 했다. 일주일간 시술을 받기 위한 치료를 하고서야 시술을 받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 온 엄마는 살이 10kg 정도 빠져있었다. 서울 다녀올 때마다 얼굴은 상해있었지만, 이 정도의 느낌은 받은 적이 없었다.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이 정도이니 엄마는 훨씬 더 불안할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엄마를 대했다.


너는 방학을 해도 어찌 엄마한테 밥 한번 먹으러 가자는 소리를 안 하냐고 내가 방학을 할 때마다 말했다. 늘 그 소리를 듣고서야 엄마와 둘이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엄마에게 만나자고 했다. 얼마 전 친구들과 먹은 순두부찌개가 별로였다고 해서 집 근처 순두부찌개 맛집으로 갔다. 다행히 여기는 맛이 괜찮다고 하셨다.

밥을 먹고 백화점으로 갔다. 엄마 생신선물을 사드리기 위해서이다. 늘 용돈 봉투로 드렸는데, 이번엔 선물을 사드리고 싶었다. 운동화와 화장품 중에서 고르라고 했다. 근데 엄마는 "너네 아빠 구두가 다 망가졌더라. 내 껀 놔두고, 아빠 구두 사주면 안 될까?"라고 묻는다. 아빠에게 전화했으나 절대 안 오시겠다 해서 결국 화장품을 샀다.

"가을 돼서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이걸 꼭 발라야 돼, 안 그럼 얼굴이 쪼이거든. 근데 이리 비싼 걸 받아서 어떻게 하니."라며 좋아하시다가 돌아서면서 한마디 덧붙이셨다.


"근데.. 내가 이걸 다 쓸 때까지 살 수 있을까?"


뭔가 이 말이 꽤 오래 내 기억 속에 남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 말을 하는 엄마의 얼굴에서 난 죽음을 보았다. 엄마가 이렇게 죽음을 가까이 느끼고 있을 줄은 몰랐다. 옛날 어르신들이 "잠결에 가는 게 내 소원이다."라고 하셨다는데, 이제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우리 엄마라는 게, 그리고 내가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는 게 서글펐다.

오산 사성암은 "한 가지 소원이 꼭 이루어지는 도량"으로 유명하다. 나는 소원바위 앞에 서서 두 손을 합장하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우리 엄마가 우리 곁에 있다가 떠나야 할 때, 그 마지막 시간이 많이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고통스럽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